느린 걸음과 괴상한 생김새, 특유의 울음소리(?)…. 분명히 죽었는데 죽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 총을 쏴도 끄떡없고 고통과 공포도 느끼지 못한다.
몇 년 전. 영화와 드라마, 소설, 웹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존재인 좀비. 이름만으로도 섬뜩하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물린 사람도 좀비로 변하는 '무한 번식력'이다.
좀비(zombie)는 원래 서아프리카 지역의 부두교에서 뱀처럼 생긴 신(snake-god)을 가리키는 말로, 콩고어로 신을 뜻하는 'nzambi'에서 나왔다. 이후 일부 아프리카'카리브해 지역 종교와 공포 이야기들에 나오는 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좀비가 최근 기업으로 환생(?)해서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좀비기업이란 회생할 가능성은 없지만 정부 또는 채권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기업을 말한다.
문제는 좀비와 달리 겉은 멀쩡해 보인다는 점이다. 정부 보조금이나 유상증자 등을 먹고 겉모습은 아주 건강한(?) 기업으로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창조경제의 탈을 쓰고 있기도 하다. 전염력은 더 강하다. 경영자'정부기관 관계자 등의 도덕적 해이와 맞물려 많은 건강한 기업까지 좀비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LG경제연구원이 628개 비금융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부채 상환 능력을 분석한 결과,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34.9%에 달했다. 이는 2010년 24.7%에서 5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늘어난 수치다. 한국은행도 2009년 2천698개(12.8%)던 좀비기업이 지난해 말 3천295개(15.2%)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대구경북에서도 중소기업 중 한계기업의 비중은 2009년 12.2%에서 2012년 15.3%, 2013년은 24.9%로 급증세다.
최근에는 좀비기업에 편승해 이익을 챙기는 좀비멘토까지 등장했다. 중간 관리자를 자처하며 좀비기업에게 정부 보조금과 지원금을 연결해주는 브로커들이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보다 못한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올해 안에 최대한 마무리 짓겠다고 벼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이달 중순 부실 징후가 큰 중소기업 1천900여 개를 심사해 11월 말까지 퇴출 대상을 가려내는 등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로드맵을 발표했다. 대출과 보증으로 겨우 연명하는 한계기업들을 방치한 채 시간만 허비할 경우 국가 경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좀비기업은 존재 자체가 시한폭탄인 셈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가계 부채보다 기업 부채가 우리 경제에 더 위협적인 요소라고 진단하고 있다. 증가한 가계 부채의 상당 부분은 높아진 주택 가격이나 전세금 때문에 발생했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지 않는 이상은 주택을 처분하거나 전세금을 반환받아 대출금 상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좀비기업이 받은 기업 대출은 공장 등 부동산이나 회사를 처분해도 대출금을 온전히 갚기에는 부족하다.
영화 속 좀비를 없애는 방법은 머리를 분리해야 한다. 좀비기업 퇴치에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부의 부실기업 정리는 '선언'으로만 끝나기 십상이다. 좀비기업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어서다. 때론 창조경제로 위장, 정부 보조금을 받기도 하고 유상증자로 주주들의 호주머니로 생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또 회생 신청으로 은행으로부터 대출 연장'이자율 감면 등을 받기도 한다.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만이 좀비기업을 퇴출시킬 수 있다. 경영진을 포함한 기업과 채권자가 철저한 구조조정 방안과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구조조정 기업이 수립된 계획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압박도 필요하다. 좀비기업이 활보하는 한 창조경제는커녕 언제 우리 경제가 좀비경제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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