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증도가자(證道歌字)

남과 북이 분단 반세기 만에 통일을 약속하고 그 상징적인 첫 사업으로 경의선 철도 완전 개통을 추진한다. 그러자 한반도의 경사가 못마땅한 일본이 1907년 대한제국과 맺은 조약을 앞세우며 이를 저지한다. '경의선 운영권 영구 양도'라는 조약 내용을 근거로 개통식을 무산시키는 한편 '한반도로 유입된 자본과 기술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윽박지른다.

한국 정부가 난처한 입장에 놓인 가운데 어느 재야 사학자가 뜻밖의 주장을 하고 나선다. 경의선 조약에 찍힌 가짜 국새가 아닌 진짜 국새를 고종 황제가 숨겨뒀다는 얘기다. 따라서 진짜 국새를 찾으면 일제의 조약 체결 강제성과 일본의 억지 주장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학자의 논리를 신뢰한 대통령의 지시로 진짜 국새 발굴이 진행되고, 동해상에는 일본 자위대가 출현한다.

한반도에 100년 전의 위기가 엄습하고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희망인 진짜 국새가 발굴된다. 국새 감정에 동참한 일본 학자까지 진품임을 인정하면서 국면은 일시에 반전된다. 일본 총리가 전 세계에 일제의 강제 조약과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2006년에 개봉된 강우석 감독의 영화 '한반도'의 그럴듯한 스토리이다.

우리는 여기서 국보급 문화재의 진위 여부가 국가의 명운과 겨레의 명예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최근 '증도가자'(證道歌字)를 둘러싼 진실 공방이 벌어지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적인 역량을 한층 더 과시하느냐, 그 위신이 오히려 추락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증도가자'는 고려시대 불교 서적으로 당나라 현각 스님이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인쇄한 금속활자를 일컫는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보다도 138년이나 앞선 것으로 알려진 것이니 예사로운 보물이 아니다. 금속활자에 관한 세계의 역사교과서를 새로 써야 하는 쾌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증도가자' 중 일부가 위조된 것이라는 감정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이에 대해 증도가자의 존재를 주장하는 서지학자와 학회 관계자는 활자의 주물 방식과 문화재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를 들먹이다가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