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동물의 배신

인도 정글에 마츨리라는 암호랑이가 있었다. 마츨리의 영토에는 먹잇감이 풍부했다. 그런데 그의 영토를 노리는 도전자가 있었다. 암호랑이 사타라였다. 사타라는 젊고 강했다. 결국 마츨리는 사타라에게 밀려 왕국에서 쫓겨난다. 놀랍게도 사타라는 마츨리의 딸이다. 딸에게 쫓겨나는 마츨리의 신세가 처연해 보인다. 그러나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마츨리 역시 10년 전 자기 엄마를 몰아내고 이 왕국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모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TV 프로그램 중에 '동물의 왕국'을 가장 즐겨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동물은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잘 알려진 대로 박 대통령은 배신을 극도로 혐오하는 정치인이다.

동물은 배신하지 않을까. 인간에게 길들여진 견공은 절대로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야생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 '타이거 퀸'이 소개한 마츨리 이야기에서 보듯 동물들도 배신을 한다. 어떤 종에게는 부모'형제조차 경쟁자일 뿐이다. 침팬지 세계에서는 일인자에게 털을 골라주며 아양을 떨던 최측근이 어느 날 이인자와 짜고 왕권 찬탈에 가담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인간과 달리 동물들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경쟁에서 지면 일단 물러난 뒤 힘을 길러 재도전의 기회를 엿보거나 패배를 받아들이고 영역을 떠난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아버지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에 과연 박 대통령이 조화를 보낼 것인지 관심이 쏠렸는데 역시나 그런 일은 없었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상주가 사양했기 때문에 화환을 보내지 않았다며 청와대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나섰지만 온갖 정치적 해석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심기가 다시금 분명히 확인됐다는 말들이 분분하다.

유 전 원내대표는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을 걱정해야 할 처지이고 대구경북 현역의원들의 물갈이설도 세트 메뉴처럼 뒤따른다. 만약 내년에 그가 국회 입성에 실패하고 현역의원들이 대거 물갈이된다면 여의도엔 재선 이상의 대구경북 의원 품귀 현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정치판에는 '선수(選數)가 깡패'라는 말이 있다. 중진이 없는 대구경북 정치권에 무슨 힘이 실릴까. 대선후보급 다선 국회의원이 여럿인 부산경남이 부러워질 지경이다. '포스트 박근혜 시대' 대구경북의 정치적 위상을 고려한 대국적 정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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