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출가스 조작 차량 12만5천 대
각종 오염 물질 뿜어대며 거리 질주
당사자 폭스바겐 대책 마련에 미온적
정부·환경단체가 운행 중단 요구해야
지난 주말을 전후로 내린 가을 단비는 극심한 가뭄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나 찌들린 미세먼지를 씻겨 내기에는 충분한 그야말로 고마운 금비였다. 흔히 중국발 황사와 석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알고 있으나, 대도시 미세먼지의 70%는 자동차와 연관돼 있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디젤 엔진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가 주요한 원인이어서, 국립환경연구원이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유차에서 배출되는 입자 크기는 대부분 1㎛(100만분의 1m)여서 유해물질에 쉽게 흡착된다고 한다. 미세먼지는 크기가 머리카락 굵기(통상 100㎛)의 5분의 1이고, 초미세먼지는 20분의 1 정도여서 호흡기에 직접 타격을 준다. 국제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13년 미세먼지를 흡연보다 해로운 1등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특히 지름 2.5㎛ 이하의 초미세먼지는 '은밀한 살인자'로 불리기도 한다.
정부도 미세먼지를 포함한 환경오염 물질의 배출자에게 환경개선을 위한 투자재원 조달 목적으로 환경개선부담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디젤을 원료로 사용하는 자동차가 가장 주요한 징수 대상이다. 다만, 유로 5(유럽연합이 정한 자동차 유해가스 배출기준으로 2009년부터 적용되고 있으며, 종래의 기준보다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입자상물질 등 각종 오염물질을 24~92%까지 감축하도록 규제) 및 유로 6(2014년부터 적용되며, 유로5보다 배출가스를 30~50% 추가 감축하도록 규제) 기준을 충족하는 차량에 대해서는 환경개선부담금 부과를 면제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폭스바겐 사태의 본질이 존재한다.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과 추가적인 생산 비용이 소요되거나, 차량의 주행 연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관계로 폭스바겐은 디젤차량의 배출가스를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환경 검사 시에만 작동하도록 했다. 일상 주행 상태에서는 연비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작동하지 않도록 차량을 설계했다. 이에 더해 디젤차량뿐만 아니라 휘발유 차량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조작한 것으로 최근 알려지고 있다.
현재까지 배출가스 조작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국내에서 판매된 차량은 12만5천여 대가량이라고 한다.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가 2천만 대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니, 거리를 활보하는 차량 1천 대 중 6대가 환경 기준을 위반한 채 거리를 질주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미세먼지를 포함한 각종 오염 물질을 뿜어대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가 이러한대도 당사자인 폭스바겐코리아는 환경부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즉각적인 대책 발표에 미온적인 상태이다. 미국에서는 차량 구매자에게 다양한 선불카드를 지급하겠다는 대책이 발표되고 있고, 유럽에서는 소비자가 부담할 세금을 전액 폭스바겐에서 납부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소비자를 봉으로 아는지 11월 한 달간 무이자 할부 등을 통해 차량 판매를 위한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겠다는 실정이다. 폭스바겐코리아 홈페이지의 디젤 엔진 관련 고객 안내 사이트에도 '조속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문구는 있으나, 안내 기사의 대부분은 폭스바겐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내용들이 주류이다.
큰 환경오염 사건이 발생하면 모두 관심을 갖는다. 지난 1991년 대구경북에선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이 발생하여 무려 1만3천여 명의 시민들이 피해신고를 했으며, 환경단체의 적극적인 이슈 제기를 통해 사회적으로 환경문제가 핵심적이고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태에서는 이슈를 제기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환경단체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환경부 조사가 발표되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오염물질 배출원인 배기가스 조작 자동차의 운행을 당장 중단하도록 강력한 요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이번 사건을 대기 환경 개선을 위한 전반적인 문제점을 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선 휘발유 대비 디젤에 대해 30% 저렴한 세율을 부과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속칭 유류세)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위법하고 부당한 소비자 피해 사례가 발생하였을 때, 더 이상 우리나라 국민이 미국 법정에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관련 법령의 정비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친환경 차량의 개발과 보급을 촉진하기 위한 연구개발 및 세제 지원과 국민적인 관심이 고조될 수 있는 정책적인 노력이 지속돼야 하겠다.
※최창윤: 1976년생. 경북대사대부고. 서울대 경영학과. 제34회 공인회계사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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