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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전태일 그리고 이 시대의 예술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 참담한 노동자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45년이 지난 지금, 전태일의 고향 대구에서 '전태일 대구시민문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노동자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본격 노동만화 '송곳'이 웹툰으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고, 웹툰 원작 TV드라마도 방영되고 있다. 만화와 드라마로 노동자의 삶과 노동운동이 다뤄지고 있지만, 과연 시대도 바뀌고 있는 걸까.

2010년 11월 6일, 인디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 씨가 숨을 거뒀다. '스끼다시 내 인생'과 '절룩거리네' 등의 노래로 인기를 얻었지만, 그의 한 달 평균 수입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의 죽음으로 음원 사이트의 불공정한 음원 수익 배분 구조가 알려지게 됐다. 500원을 주고 한 곡을 내려받으면 창작자에겐 고작 30원밖에 돌아가지 않는 구조였다. 왜곡된 유통구조는 음악인들에겐 이중, 삼중의 착취일 수밖에 없었고, 그 구조 속에서 가난한 인디뮤지션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듬해인 2011년 1월,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씨 역시 이웃에 도움을 요청하는 짧은 쪽지를 남긴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가 제작되면 몇천만원의 시나리오 비용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가 제작되지 않는다면 시나리오 작가에게 돌아가는 돈은 없다.

최고은 씨의 죽음으로 일명 '최고은법'으로 불린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었지만, 예술가로서의 경력이 짧은 젊은 예술인들은 '예술인 복지법'에서 말하는 예술인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아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많다. 결국 '최고은 없는 최고은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영화배우 판영진과 연극배우 김운하 역시 생계에 직면해 죽음을 택한 예술인들이었다.

'가난한 예술가'라는 말이 마치 하나의 명사처럼 불리듯이, 예술인들은 자신의 창작활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생계와 싸워야 하는 힘든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예술이지만, 정작 예술인들의 삶은 풍요와는 거리가 멀다. '전태일을 상상하라'라는 전태일 대구시민문화제의 슬로건처럼, 전태일이 지금 시대의 예술인들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상상해보자. 잘은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하는 공장의 노동자처럼, 열심히 창작활동을 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한 사람의 노동자로 바라봐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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