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길 위의 생명들'과 인간의 공존

옛날 집에서 키우던 동물들은 가축 이상의 의미였다. 당시엔 '애완'의 개념이 희박했고 반려라는 개념은 더욱 생소했다. 다 자라 어쩔 수 없이 팔거나 식용으로 처리해야 했지만 키우는 동안만큼은 가족처럼 지냈다.

어릴 적 집에서 키우던 개가 개장수에게 팔려 가면 며칠씩 우울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10살쯤인가 팔려가던 개가 품에 뛰어올라 나를 바라보던 촉촉한 눈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주(四柱)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앞산 자락에서 풍수, 명리를 연구하는 하국근(희실재) 씨는 동물에 애정을 쏟는 사람들은 사주 중 식신(食神), 상관(傷官) 기운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즉 아랫사람이나 약자를 보호하는 성품을 타고나 어려움에 처한 동물들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구 팔공산에서 유기견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박영보 씨는 시장도 맘 놓고 가지 못한다. 건강원 앞에 갇혀 있는 동물들과 눈을 맞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회원들과 사료를 사러 시장에 나왔다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고양이들을 '구출'해 쉼터로 데려오기도 했다.

동물협회 회원들의 사고는 일반인의 시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조건 없이 주머니를 털어 후원금을 내고 바쁜 주말을 쪼개 쉼터에 와서 개, 고양이를 목욕시킨다. 질병에 걸렸거나 나쁜 버릇 때문에 보호가 필요한 '문제아'들을 집으로 데려가 몇 달씩 보호, 치료하기도 한다.

주간매일에 'DIY'를 연재하고 있는 인기 블로거 김은미 씨도 소문난 애견맘이다. 올봄 유기견쉼터에서 '장롱이'라는 강아지를 입양했다. 누군가 이사를 하면서 장롱 속에 강아지를 버리고 간 것을 김 씨가 데려온 것이다. 초기 폐렴 치료비가 100만원 넘게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이름도 '복만이'로 바꾸고 식구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지난달 용인시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옥상에서 떨어진 벽돌에 한 캣맘이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거리를 헤매는 동물들에 대한 다양한 사회의 시각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길고양이를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 독극물을 뿌리거나 집단사냥을 하는 사례가 전국에서 발견되었다. 반면 동물보호단체나 캣맘들은 골목에 고양이 사료를 사 나르고 일부는 수십만원하는 중성화 수술을 자비로 시켜주기도 한다.

길 위의 생명들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 강동구청에서 내놓은 아이디어는 이런 고민에 대한 좋은 해답이 된다. 구청에서는 2013년부터 60여 곳에 '고양이급식소'를 차려놓고 매일 먹이를 주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캣맘들이 사료주기와 청소를 담당하고 구청은 중성화 수술을 지원한다. 이렇게 해서 주민들은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다.

모든 숨 쉬는 것은 평등하다는 것은 진리지만 유기동물을 향한 시선은 고르지 않다.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 없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

캣맘들은 이렇게 말한다. "버려진 동물을 입양하지 않아도 좋고 먹이주기에 동참하지 않아도 좋다. 단지 우리가 하는 일 이해만 해달라고."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