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계 태두 되기를 바랐는데
정치인 닮아가는 모습 안타까워
당당하고 명쾌했던 정 교수는 어디에
결심 서지 않았다면 학계로 돌아오길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이력은 특이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지만 석사는 경희대, 박사 학위는 연세대에서 받았다. 스승인 허영 교수를 따랐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허 교수를 사사하기 위해 학교를 옮긴 것이다. 외국에선 흔하지만 우리나라 학문 풍토에서는 흔치 않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실력(實力)보다 학력(學歷)이 우선인 우리 학계의 일반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정 장관이 어려운 선택을 주저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자신감이라고 할 수도 있을 법하다.
학문적 태도에서도 비슷한 자신감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사법시험에 합격했음에도 판'검사나 변호사를 마다하고 헌법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흔한 외국 유학도 가지 않았지만 정종섭 교수의 학문적 성취는 자랑할 만하다. 특히 개인적으로 존경과 공감을 보내는 부분은 그의 문제인식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살면서 여기서 발생하는 우리의 헌법적 문제들을 가장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학문적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 왔다는 부분이다.
외국의 이론이나 경험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하려 하는 시도는 경우에 따라서 무지하거나 무모한 것이다. 우리의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 설득력 있는 방안이 자신의 신념이나 소신과 다르다면 개인적 호불호나 기호는 포기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정 교수의 견해에 나도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였다. 진보·보수 이념이 만능인 양 공리공론적 다툼만 일삼는 쉰 소리에 식상한 때문이다. 정 교수가 헌법학의 중진을 넘어 학계의 태두로 우뚝 서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그래서였다.
정종섭 장관 후보가 발표되었을 때 아쉬움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학문적으로 결실을 거둬야 할 시점에 본인을 위해서나 학계를 위해 바람직한 선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왕 택한 길이라면 성과를 남기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정 장관이 여러 글에서 강조해 온 것처럼 21세기를 위해 우리 국가 운영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다면 학문과 현실의 이상적 조합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적대적 증오감이 거의 유일한 작동원리인 우리 정치현실에서 이상 추구는 불가능하다. 한 사람을 누더기로 만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정치로 인해 정 장관은 청문회 과정부터 적지 않은 흠집이 났다. 낙마할 정도의 사유는 아니지만 과거 남들과 비슷하게 지냈던 소소한 문제들이 드러난 것이다. 정 장관은 국회법 개정안 정국에서 또 상처를 입는다. 개인의 소신과 장관의 견해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궁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른바 '총선 필승' 건배사로 정 장관은 결국 정치의 진흙탕에 빠지고 말았다.
정치권의 이런저런 공격을 받으면서 평소 권위 있던 학자로서의 정 장관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결정적인 것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말을 바꾼 것이다. 갑작스레 일요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나 자신의 거취를 놓고 논란이 있어서 이를 정리하기 위해 사의를 표한다는 변명도 웃음거리다.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은 노련한 정치인을 보는 듯하다. 당당하고 명쾌한 논리를 펼치던 정종섭 교수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안타깝다.
만약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출마를 포함한) 어떤 일이라도 할 각오'가 섰다면 이제라도 당당히 포부를 밝혀야 한다. 장관으로서는 아무 업적을 쌓지 못했지만, 국회의원으로서 국가 시스템 개혁을 위해 어떤 청사진이 있는지를 알려야 한다.
만약 본인의 말처럼 정말 결심이 서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학계로 돌아오는 게 좋겠다. 신망받는 학계의 중진이 장기판의 졸처럼 시답잖은 정치인들에 의해 이리저리 치받치는 모양새는 정말이지 눈 뜨고 보기 어렵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이던 학자로서의 모습이 정 장관에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똑같은 안타까움을 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싶다.
※노동일: 1957년생. 중졸검정고시. 서울공고·경희대 법대·미국 사우스웨스턴 로스쿨 졸업. 미 연방 변호사. 현 KBS1 라디오 공감토론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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