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뇌과학자의 이야기이다. 창의성과 동기 부여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육체적) 배고픔 혹은 결핍을 경험한 상태에서 분비가 잘 된다고 한다. 즉 배고픔을 느껴본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동기 유발이 더 잘 된다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이나 청소년들이 매사에 의욕과 열정이 부족한 것은 그런 배고픔(결핍)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부모들이 하루 세 끼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서 먹이니, 항상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어떤 일에도 동기나 의욕이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의도적으로라도 굶주림을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부모 마음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배고플세라 힘들세라 부족할세라 남보다 뒤처질세라, 이것저것 챙겨 먹이고 입히고 대신해 주고 싶은 마음이 누구라 다르겠는가. 뇌과학자의 경고야 어떻든 지금 눈앞에서 자식이 힘든데 못 본 체할 부모가 몇이나 될까. 그럴진대 의도적으로 결핍을 경험하게 할 수가 있을까. 먹이고 입히는 것뿐만 아니라 자식이 힘든 모든 걸 대신해 주고 싶은 게 한결같은 마음일 텐데.
그러나 대신해 줄 수 없는 일도 있다. 공부가 그중의 하나일 텐데, 자식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부모들이 어찌해 줄 수가 도무지 없다. 책상 앞에 앉기 싫어하는 자식을 아버지가 대신할 수는 없다. 자식이 아무리 밤새워 공부한들 자식을 재우고 엄마가 밤을 새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애틋하고 안쓰러워도 간식이나 챙겨 주고 밤늦은 시간 학교나 학원 앞에서 기다려 주는 것 정도일까. 자식의 (정신적) 배고픔에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 뇌과학자의 말은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다. 요즘 우리 자녀 세대가 느끼는 배고픔이 비록 육체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엄청난 결핍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느라고 애쓰는 청소년들을 보면 뉘 집 자식 없이 그들의 고통과 결핍이 절로 느껴지는데….
대입 시험은 이처럼 온 가족에게 힘든 과정이다. 자녀들도 공부하는 게 힘들 테지만, 부모들이나 주변 사람들도 그에 못지않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나오는 단골 사진이 있다. 입시 기도의 명소인 팔공산 갓바위 부처 앞에 수많은 수험생 학부모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는 사진이다. 지난 주말에는 비가 오시는데도 아랑곳없이 수많은 부모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 찬비를 오롯이 맞으며. 갓바위 부처님에게뿐만이 아니라, 성당이나 교회에서도 비슷한 기도 모임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수학 문제 풀고 영어 단어 외우는 건 자녀들인 수험생들의 몫이겠지만, 그들을 격려하고 마음 써 주는 건 부모님인 것이다.
30여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입 시험(당시에는 학력고사라는 이름이었다)을 보는 날에는 그 추위에도 불구하고(11월 말~12월 중순이었다) 어머니들이 교문 바깥에서 하루 종일 두 손을 꼭 모아 기도하고는 했다. '애타는 모정'이라는 제목을 달고 신문 1면에 단골로 실린 사진이었다. 어머니의 앞에는 교문 창살이 있고 그 창살들 여기저기에는 누런 엿 덩이가 휘감겨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대입 시험은 온 가족이 함께 치르는 대사이다.
그런 힘들고 먼 길을 걸어 이제 막바지 길목으로 들어섰다. 지난 3년, 아니 10여 년간 뒷바라지에 힘들었을 부모님, 함께 걱정해 준 가족들, 친구들 모두모두의 기를 모아 모아서 마무리를 잘하는 하루가 되길 빈다. 오늘만큼은 우리 수험생 모두에게 도파민이 쑥쑥 분비되어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가장 피가 끓을 청춘기에 영혼의 배고픔을 잘 참아내었을 것이기에.
사족. 이번 주 매일신문 주말판 '즐거운 주말'에서는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을 위한 메뉴를 차려 보았다. 시험을 마친 후부터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배워 두면 좋을 것들, 가보면 하는 여행지들, 읽고 볼만한 책과 영화들도 준비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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