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게 세운 계획과 충분한 통계만 있으면 계획경제가 '무정부적' 시장경제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믿음이었다. 맞는 소리로 들리지만, 전제에 문제가 있다. 얼마나 치밀해야 '치밀한' 계획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충분해야 '충분한' 통계인지를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상은 생각도 못 한 변수로 가득하며, 그래서 경제 환경은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적의 자원 분배 방안을 수학적으로 규명한 공로로 197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소련 경제학자 레오니트 칸트로비치의 실패는 이를 잘 보여준다. 칸트로비치는 1960년대 소련 철강업계로부터 최적 생산 일정을 수학적으로 해결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의 노력으로 더 효율적인 생산 프로세스가 만들어졌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계산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에만 6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을 때는 이미 소련 경제가 요구하는 것도 달라져 있었다.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테리스 파리부스'('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이란 뜻)라는 우회로가 있다. 미시경제학을 개척한 앨프리드 마셜이 제안한 것으로, 하나의 변수를 검토하는 동안 다른 모든 변수를 '불변'으로 묶어두는 방법이다. 검토 대상이 단순하니 정확한 분석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과학적 경영관리 기법을 창안한 프레데릭 테일러는 금속의 절삭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12개 독립변수의 효과를 연구했는데, 그 시간이 26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절삭 공구의 접촉 각도, 절삭 깊이 등 12개 변수 각각의 효과를 측정할 때마다 나머지 11개 변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됐던 것이다. 금속의 절삭 속도라는 지극히 단순한 문제의 분석에 이렇게 많은 시간이 든다면 심리적 동기까지 작용하는 복잡한 경제 현상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건설'조선회사의 해외 부실 수주를 막기 위해 사전 수익성 평가를 의무화한 정부의 조치는 일종의 오만이다. 수익이 날지 안 날지는 환율, 국제 유가, 발주 국가의 재정 상황 등 수많은 유동 변수의 다층적(多層的)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그 많은 변수를 모두 고려해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당장은 수익이 나지 않을 것 같아도 나중에는 수익이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익이 나는 사업만 수주할 수 있다면 왜 망하는 기업이 나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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