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섬유공장에 다니던 아버지 밑에서 2남 3녀의 장남으로 어렵게 컸던 나채재(49) FTV 대표. 집안은 어려웠지만 5남매는 우의가 깊고 쾌활했기에 정신적으로는 늘 풍요로웠다. 항상 밝고, 끼와 재치가 넘쳤다. 대학에서는 넘치는 끼를 잘못 발산하다 종종 사고를 치기도 했다.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디뎠지만, 안주하지 않고 줄곧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역 민영방송 설립을 주도하다 고배를 마신 뒤 케이블방송 설립에 참여해 결국 인가를 받아냈다. 여기서도 만족하지 않고 프로그램 공급업체 설립에 공동 참여한 뒤 2년 만에 CEO에 올랐다.
자신의 삶의 역정을 얘기하던 그는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듯 방송도 프로듀서, 기자, 아나운서 등에만 매달리지 않고 시선을 돌리면 더 넓고 다양하게 보인다"며 "프로그램 세일즈나 판권, 컴퓨터그래픽 등 관심 분야를 넓히면 다양한 길이 열릴 수 있고 방송도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방송 지망생들에게 한마디했다.
힐링으로서의 낚시를 강변하는 나 대표로부터 낚시와 방송, 삶의 역경을 들어봤다.
◆캠퍼스의 추억
나 대표는 학창 시절 종종 사고(?)를 쳤다. 특히 대학 때는 후배들에게 술을 사준다는 핑계로 대형 사고를 내기도 했다.
대학 2학년 겨울, 캠퍼스에서 동기들과 어울려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을 마셨다. 나뭇가지가 모자라 불이 제대로 타오르지 않고 꺼지면서 다른 곳에 눈길을 돌렸다. 다음날 아침, 경상대 관리사무소가 떠들썩했다. 경상대 건물 정문에 붙어 있던 나무 팻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동기, 후배들과 캠퍼스에서 술을 마시던 어느 날 밤, 술값이 떨어졌다. 동기 3명과 함께 인문대 건물로 들어갔다. 여자 화장실에 설치된 자동판매기를 뜯어내다 결국 넘어뜨리고 말았다. 고요한 캠퍼스에 굉음이 퍼졌고, 컴컴한 건물 안 곳곳에 불이 켜졌다. 대학 전체 수위실에 비상이 걸렸다. 이 사건이 있은 얼마 뒤 대학 내 모든 자판기에 철망이 쳐졌다. 인문대를 빠져나온 이들은 사회과학대 공중전화 부스에 손을 대다 결국 수위 아저씨 2명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학생증을 뺏긴 다음 날 백배사죄한 뒤에야 돌려받을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과 실패
1992년 대학 졸업 뒤 방송위원회 공채 6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독립기관인 방송위와 공보처 산하 종합유선방송위원회는 당시 업무 중복과 파워게임으로 잦은 갈등을 빚다 몇 년 후 방송법 개정으로 통합됐다. 나 대표는 기획실에서 공중파 방송의 국회 연차보고, 국정감사 수감 등 업무를 주로 맡다 지역 민영방송이 생길 즈음 그만뒀다. 방송의 인허가나 심의, 관리 등 업무보다 직접 방송에 뛰어들어 역동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
경남 울산에서 2차 민방 설립을 준비하던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밤낮없이 사업계획서 등을 꼼꼼하게 준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민방 설립에 고배를 마신 그는 다시 케이블방송에 도전했다. 울산케이블TV 설립을 주도해 결국 인가를 받아냈다. 기획팀장부터 마케팅팀장, 편성제작팀장 등 중책을 맡았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뉴미디어가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앞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업체가 각광받을 것으로 예견했다"며 "마음 맞는 몇 분들과 건전한 낚시문화를 겨냥해 프로그램 공급업체를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2000년 채널 사용 허가를 받아 2002년 ㈜한국낚시채널 FTV를 개국했다. 차장, 부장, 국장, 이사를 거쳐 2년 만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월척특급, 월척을 낚다
민물, 강, 바다에다 붕어, 떡붕어, 누어, 플라이 등 다양한 낚시 종류를 감안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연간 200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체 제작 비율 80%를 넘겼다.
낚시뉴스를 비롯해 낚시 중계와 분석, 리얼 버라이어티 '삼시라면' 등 보도, 오락, 다큐멘터리를 포괄하는 종합 편성으로 시청률을 올렸다. 중국 3개, 일본 1개 방송국에서 FTV 일부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뉴질랜드 한 IP TV는 FTV 전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스포츠신문 웹툰을 소재로 한 최초의 낚시드라마 '손맛'을 제작, 캐나다국제영화제 외국단편영화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FTV에서 단연 월척 프로그램은 '붕어낚시 월척특급'이다. 월척은 엄밀히 붕어에만 해당된다. 삼국시대에는 1척이 20.2㎝, 지금은 30.3㎝다. 붕어 월척을 낚는 것은 낚시꾼의 꿈이다.
그는 "2002년 3월부터 매주 1차례씩 월척을 목표로 한 방송을 내보내 호응이 없으면 3개월 뒤 폐지할 요량으로 제작에 들어갔는데, 촬영 갈 때마다 월척이 낚였다"고 했다.
붕어낚시 마니아들이 많은 데다 매주 월척이 낚이는 통에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두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 문의와 함께 항의전화가 폭주했다. '낚시터 물고기가 다 없어졌다' '못이 쓰레기장이 됐다' '자동차 수백 대가 몰려 농사를 못 지을 지경이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후 촬영지 비공개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3개월 시한부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13년째 방영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500회 특집을 꾸몄다. 단일 타이틀로 시작한 프로그램 중 최장수로, 가히 '케이블TV의 전국노래자랑' 격이다.
◆역사와 예술을 품은 낚시, 힐링으로
나 대표는 낚시에는 역사와 과학, 예술이 담겨 있다고 했다. 특히 중독성 강한 낚시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한 힐링으로서의 낚시를 강조했다.
그는 "천렵을 하던 고대의 낚싯바늘과 현재의 바늘이 '미늘'을 제외하고는 동일할 정도로 바늘 제작에는 과학성이 있다"며 "조선시대 낚시 풍광을 담은 그림에는 낚싯대와 줄의 방향 등이 물과 바람, 빛의 상태와 흐름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조가 경복궁 안에서 낚시를 즐기며 풍악을 울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울산 반구대암각화와 용산 전쟁박물관에 담긴 물고기 그림 등을 통해 낚시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다"고 했다.
나 대표는 마약이나 섹스 중독자들을 낚시로 치료하는 미국의 사례를 들며 힐링을 위한 낚시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중독, 환경오염, 침수사고 등 부정적 이미지로서의 낚시보다 집중력 향상, 성취감,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레포츠로서의 낚시에 관심을 가질 것"을 권유했다.
이를 위해 어린이 글짓기, 사생대회 등 가족과 함께하는 낚시대회, 낚시 교육 프로그램, 역사성을 담은 낚시영화 제작 등을 통해 건전한 낚시문화 정착에 더 힘을 쏟을 계획이다.
◇한국 낚시 마니아들은?…30,40대 남자가 70% 아버지·친구 권유로 입문
우리나라 낚시 마니아는 어느 정도일까. 한 달에 한 차례 이상 낚시를 하는 사람 기준으로 해양수산대학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무려 650만 명이다. 우리나라 20명 가운데 3명 이상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낚시를 하는 셈이다.
나채재 FTV 대표는 "낚시는 중독성이 강하다"면서도 "낚시를 하는 사람이 특별난 사람이 아니고 보통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나 대표가 2013년 석사논문을 위해 조사한 결과 낚시 마니아는 10대에서 60대까지 지역별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 70% 이상이 30, 40대 경제권을 가진 남성이고, 50%가 월 소득 200만~400만원의 중산층으로 나타났다. 낚시를 첫 경험한 평균 나이는 16.5세, 낚시를 하게 된 계기는 80%가 아버지와 친구의 추천이었다. 선호하는 낚시 장르는 민물 대 바다가 65 대 35였다. 인구통계학적 분석을 종합할 때 대한민국 표준낚시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월 400만원의 소득을 가진 수도권에 거주하는 30대 중반 남자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나 대표의 조사결과보다 조사대상자들의 설문 응답률이다. 낚시채널 인터넷 홈페이지 회원 8만 명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는데, 4천333명이 응답을 했다. 특히 설문 문항이 110개였는데도, 4천333명 중 3천320명이 100% 응답을 했다는 점이다. 낚시 마니아들의 낚시 관심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낚시 마니아는 한국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호주나 뉴질랜드는 전 국민이 낚시광이고, 일본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낚시 마니아로 조사됐다. 프랑스도 500만 명에 달했고, 중국은 낚시대회에 수십만 명이 모여들 정도로 마니아가 급증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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