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냉전시대에 걸맞은 오락영화의 대표 상품 '007' 시리즈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제임스 본드를 내세우며 성공적으로 부활했다. 잘 생기고 건들건들한 바람둥이에서 21세기형 제임스 본드는 무뚝뚝하고 진지하지만 신비롭다. 21세기 제임스 본드를 창조한 6대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는 잘생기지 못한 외모 때문에 처음에는 팬들의 심한 반대에 시달렸지만, '007 카지노 로얄'(2006)과 '007 스카이 폴'(2012)의 인상 깊은 캐릭터 창조로 열렬한 찬사를 끌어내었다.
007 시리즈 24번째 이야기 '007 스펙터'는 그 어느 시리즈보다도 기대감을 갖게 했는데, 전작 '스카이 폴'이 어마어마한 비평적 찬사와 함께 역대 시리즈 중 가장 흥행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덤으로 아델이 부른 주제가는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했다. '스카이 폴'은 제임스 본드의 내면의 아픔을 드러내었으며, 그의 과거를 살짝 공개했고, 그간 여성혐오의 감정을 실었던 본드걸 캐릭터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가장 혁신적인 것은 본드의 상관인 M을 여성으로 설정하여 본드걸의 변형이자 유사 어머니로 등장시키고, 미스터리한 악당 실바와 본드, M의 관계를 일종의 가족 로맨스로 만들어 아련한 아픔을 던졌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뷰티'(1999)와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 등 멜로드라마로 명성을 떨친 샘 멘데스 감독이 총지휘한 '스카이 폴'로 인해 007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완전한 변화를 보여주었고,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으며, 007 팬을 확장시켰다.
'스펙터'는 샘 멘데스의 두 번째 007 연출작이다. '빰빠라빰빠~ 빰빠라빰빠~'로 시작하는 특유의 주제선율이 들리고, 총을 든 본드의 실루엣이 관객을 향해 손짓하면 올드팬이곤 뉴팬이건 가슴이 요동칠 것이다. 50년간 성공적으로 이어진 오락영화의 힘이 느껴진다. 멕시코시티의 '죽은 자들의 날' 축제를 배경으로 하는 거대한 군중씬으로 오프닝이 열린다. 그리고 시리즈 특유의 끈적끈적한 주제가는 이번에 그래미어워드에서 네 개 부문을 휩쓴 영국의 떠오르는 스타 샘 스미스가 부른다.
멕시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영국을 오가는 거대하고 장엄한 군중신과 액션신, 무뚝뚝하고 파워풀하지만 여전히 신비로운 제임스 본드, '오스틴 파워'의 닥터 이블의 모델인 007 시리즈의 대표 악당 블로펠드와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조직 스펙터의 재등장,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인 레아 세이두의 본드걸 출연, '인터스텔라'와 '그녀'를 촬영한 호이트 반 호이테의 영상, 드론 시대에 존재 가치를 위협받는 MI6의 혁신 등 영화는 잔뜩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결론적으로 '스카이 폴'에 열광한 신세대 007 팬에게는 허무함을, 오랜 007 팬에게는 향수와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본드와 과거와 고통, 그의 어둠의 표현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본드의 고통을 만든 자이며 세계 장악 계획을 실현하는 독재자, 사상 최대의 악당 블로펠드의 활약은 생각보다 폭발력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화려한 축제, 황량하고도 아름다운 사막, 거대한 폭발 장면이 전달하는 쾌감이 엄청나고, 스스로 선택하고 뛰어드는 멋진 여성 파트너도 좋다.
정보가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개개인은 완벽하게 감시당하는 통제 사회로 나가고, 폭발 테러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에 영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정보 공유라는 협약을 맺는다. 이에 고전적인 방식으로 적을 찾아내고 징벌하는 제임스 본드 식의 첩보전은 쓸모없어지고, MI6은 해체 위기에 놓인다. 자신의 과거와 연관된 암호를 추적하던 제임스 본드는 사상 최악의 조직 스펙터와 자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개인적으로 추적하는 과정에서 MI6은 그를 포기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받는다. 본드는 홀로 고립될 위기에, MI6은 해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다.
'살인번호'(1962)에서부터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까지 총 6번에 걸쳐 등장한, 최고로 악명높은 조직 스펙터가 40여 년 만에 다시 등장한다. 반복과 재해석으로 새로운 시대의 변화와 과거의 향수를 골고루 만족시키려는 샘 멘데스 감독의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작품이다. 공은 관객에게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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