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비우당(庇雨堂)

비우당(庇雨堂)

필자는 선비 사상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선비 사상은 유독 비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그중에 비우(庇雨)라는 말은 '근근이 비를 가린다'는 말이다. 이 말은 청빈한 삶의 상징적 보통명사가 된 말이다. 위대한 저작 '지봉유설' 을 남긴 조선시대 학자 이수광의 별호가 비우당이요, 그의 집 당호도 비우당이었다. '비우당'이란 말은 이수광의 집터에 오래전에 살았던 조선 초기 우의정을 지났던 유관(柳寬)으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가 우의정으로 있을 때 동대문 밖 비우당 자리에서 살았는데 담도, 울타리도 없고, 문도 없는 초막집이었다. 그는 늘 감사와 자족, 그리고 청빈의 삶을 살았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방안에서 우산을 펴고 천장에서 새는 비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우란 말은 집안에서 우산을 펴고 새는 빗물을 가리는 청빈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그 위치에서 너무 궁상을 떠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는 많은 월급을 타는 고위 공무원으로서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의 청빈한 삶을 상징하는 '비우당'을 생각할 때마다 청빈한 삶보다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베풀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선비 정신을 생각해야 한다. 그는 가난한 수많은 제자들을 돕고 서민들을 위해 동네 다리를 놓는 일 등 사회와 힘든 이웃을 위해 멋지게 쓸 줄 아는 분이었다.

불쌍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설립된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이 있다. 이 재단은 2007년 5월 별세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을 기리고 그의 유언을 집행하기 위해 2009년 설립됐다. 평생 안동시 일직면 시골교회의 종지기로 사시면서 가난과 외로움을 벗 삼아 살았던 선생은 참 따뜻하고 깊이 있는 동화를 우리에게 많이 주셨다. 선생은 별세 직전 "인세 수입은 남북한의 불쌍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따라 재단은 남북한 어린이 돕기에 진력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남북 관계 경색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어린이를 위한 사과나무 심기 지원금을 보내고, 함경북도 온성군의 유치원 급식비를 대주거나, 북한 영유아에게 우유 보내기 등의 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뚫어진 창문과 맞지 않는 문틈 사이로 숭숭 들어오는 움막 같은 작은 집에 살면서도 그는 불쌍한 어린이를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간 배우지 못한 이 시대의 특별한 선비의 삶이었다. 필자는 권정생 선생의 집을 방문하면서 이 시대의 또 다른 비우당을 보았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참 많은 표현을 한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 아름답다, 관심이다, 주는 것이다, 이해다, 용서다, 관심이다 등등. 모두 다 공감할 만한 말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진정한 사랑은 남의 유익과 이익을 위해 내가 손해 보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손해 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지금 이 시대는 청빈한 삶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자기희생을 통한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우당은 바로 남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12일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그동안 인생의 첫 힘든 관문을 향해 힘들게 달려온 청소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공부해서 남주자'이다. 나의 부귀, 권세, 영화를 위한 공부라면 참 서글프다. 남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나는 힘들게 공부하는 '비우당' 정신이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심어지면 좋겠다. 생존경쟁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 시대에 필자의 너무 과한 욕심일까?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

장창수 대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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