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헤럴드가 파견한 통신원 스탠리는 1871년 11월 10일 영양실조와 말라리아로 거의 죽음을 눈앞에 둔 처참한 모습의 리빙스턴을 발견했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 "예, 당신을 이곳에서 만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서양인들은 이 짧은 대화에서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리빙스턴이 16년 만에 아프리카로 돌아온 1856년 그는 이미 영국의 국민적 영웅이었고, 이 7만 권이나 팔려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유명 인사였다. '빅토리아 폭포'란 명칭으로 여왕의 이름을 후세에 영원히 알린 것도 그였다. 뉴욕헤럴드가 1866년 실종된 그를 찾아 나선 것도 이런 명성 때문이었다. 극적인 만남 후 스탠리는 5개월 만에 떠나고 리빙스턴은 현지에 남아 나일강의 수원을 찾다가 1873년 5월 1일 오두막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숨을 거뒀다. 노예무역을 뿌리 뽑고 선교 여행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온 지 33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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