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태맹의 시와함께] 느티나무 하숙집

# 느티나무 하숙집

-류인서(1960~ )

저 늙은 느티나무는 하숙생 구함이라는 팻말을 걸고 있다

한때 저 느티나무에는 수십 개의 방이 있었다

온갖 바람빨래 잔가지 많은 반찬으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수많은 길들이 흘러와 저곳에서 줄기와 가지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발 빠른 늑대의 시간들이 유행을 낚아채 달아나고

길 건너 유리로 된 새 빌딩이 노을도 데려가고

곁의 전봇대마저 허공의 근저당을 요구하는 요즘

하숙집 문 닫을 날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을 놓고 틱틱 끌리는 슬리퍼, 런닝구,

까딱거리는 부채, 이런 가까운 것들의 그늘하숙이나 칠 뿐

(전문. 『여우』. 문학동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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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도 늙어가는 탓일 거다. 요즘 하는 케이블TV 드라마 을 보면서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울컥거림을 경험한다. 평상에 둘러앉은 당시가 보여주는 또는 1988년이 회상하는 과거의 공간들은 우울하면서도 달콤하다. 이 달콤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돌아가신 엄마가 언제 가장 보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극 중 한 화자의 대답, '내일 엄마가 가장 보고 싶다'는 말은 산비탈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어 울던 나의 어린 시절을 불러왔다. 과거의 아픔이 현재의 달콤함으로 바뀌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란 것이 시간이 아니라 공간적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은 공간의 배치와 그 관계의 강도에 의해 구조화된 삽화다. 내가 울던 그 산비탈 골목길과 이 시의 느티나무 하숙집은 시간이 불러낸 과거의 한 지점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왔던 한 공간, 처음 등장하여 무한의 강도를 가지고 내 머릿속에 꽂혀 있던 공간의 단순화된 삽화다.

그러나 우리가 늙어가고 흔히들 말하는 '꼰대'가 되는 순간은 이 공간을 절대화하는 순간이 아닐까. '유리로 된 새 빌딩'이 보여주는 노을은 새로운 아이들에게 아름다움의 공간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 나도 늙어가는 탓일 거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아무렇게나 누워, 구름과 바람과 시원한 그늘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그리워하는 건 지금의 삶이 점점 더 낯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또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한 공간을 구성해야 한다는 의무와 화해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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