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타당한 해석, 기발한 해석

수능시험에 자신의 시가 나온 시인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시인데도 문제를 풀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일을 근거로 시험 문제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은 문학 작품에 대한 생각 중 가장 잘못된 생각 중 하나이다.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 애초에 작가가 의도한 것을 찾는 것이라면 문학 작품을 읽고, 해석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작가의 말을 읽으면 그만이다.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라면 문학은 시험을 통해 해석과 감상 능력을 측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문학 작품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감상, 그를 통한 의미 부여는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 된다. 독자들이 문학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타당한 해석을 찾아가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만의 기발한 해석을 찾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타당한 해석이라는 것은 수능과 같은 시험에서 이루어지는 해석으로 작품을 읽으며 작품 안에 있는 말들의 관계와 외부 자료를 수집하여 가장 그럴듯한 해석을 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기발한 해석은 작품에 나와 있는 상황이나 어느 한 부분을 전적으로 자신의 삶과 경험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으로 시험 상황에서는 인정되지 않지만, 문학 작품을 읽는 재미와 의미는 더 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유치환 시인의 '깃발'이라는 아주 유명한 시인데, 이 시를 통해서 해석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여기에서 깃발은 푸른 해원을 향해 가고 싶어 하지만, 깃대에 매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국 좌절하고 마는 '애달픈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나아가면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 때문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낭만적 아이러니'라고 부르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까지 연결할 수도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현실적인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 좌절하고 만 자신의 경험을 이 시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이상을 추구하는 나를 붙잡는 것이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유부남의 사랑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처럼 독자들은 타당한 해석과 자신만의 기발한 해석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즐긴다.

얼마 전 가수 아이유의 '제제'라는 노래의 가사가 논란이 되었었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원작의 의미를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출판사의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논객들의 설전이 있었다. 문학 작품은 독자의 삶과 연결되고, 끊임없이 재해석됨으로써 생명력을 갖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이유의 제제에 대한 해석에는 나름 개인적인 경험에서 오는 기발함이 있다. 그 해석이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원작의 의미 훼손이라는 것으로 논쟁을 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경직된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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