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당장 무너질 듯 낡은 집…할머니가 위험해요"

가족고 추억 남겨진 집 안 떠나…이웃 "도와 주세요" 애타는 호소

10년 전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최춘이 할머니는 1년 전 큰아들마저 암으로 숨졌다. 폭설이 오면 지붕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낡은 집.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집에서 할머니는 올겨울을 나야 한다. 주변 사람들은 애가 타고 있다. 신동우 기자
10년 전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최춘이 할머니는 1년 전 큰아들마저 암으로 숨졌다. 폭설이 오면 지붕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낡은 집.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집에서 할머니는 올겨울을 나야 한다. 주변 사람들은 애가 타고 있다. 신동우 기자

"당장 무너지더라도 여기가 내 집이지. 죽더라도 이곳에 있고 싶어."

최춘이(75) 할머니는 아침만 되면 집을 나선다. 할 일이 있는 것도,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금세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집을 피하기 위해 그저 발길을 옮길 뿐이다.

경로당에 들렀다가 동네 이웃집에서 밥을 먹고는 저녁이 되면 집으로 들어선다. 산짐승이 마음껏 담장을 넘고, 흙벽이 쉴 새 없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최 할머니는 항상 이곳에서 눈을 붙인다.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두 아들과 두 딸의 웃음소리를 듣던 집이기 때문이다.

30년 전 최 할머니는 포항시 남구 오천읍 진전리,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왔다. 포항과 경주의 경계선에 위치한 이곳은, 오천읍내에서 승용차로 20여 분이나 시골길을 지나와야 하는 오지마을이다.

막노동을 하던 남편이 사기를 당하면서 도망치듯 쫓겨온 시골 생활이었다. 그래도 이내 정을 붙였고, 2남 2녀의 자식들이 태어나면서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0년 전 남편이 세상을 뜨고, 막내딸은 고등학교 때 가출해 소식이 끊겼다. 첫째 아들은 위암에 걸려 1년 전 죽었고, 둘째 딸은 이혼 등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주 연락하기 힘들다. 그나마 명절이면 들러보는 둘째 아들도 대구 등지에서 막노동하며 살아가는 통에 어머니를 돌아볼 여력이 없다.

사실상 홀로된 할머니는 몇십 년 된 집을 지키고 있다. 옛날 초가집을 양철로 덧대며 수리해온 탓에 여기저기 짚이 삐져나오고 비가 오면 물이 새지 않는 방이 없을 정도다. 어른 팔뚝만 한 기둥으로 받친 사랑방 처마는 조금만 힘을 주면 금세 와르르 무너질 듯하다.

곧 겨울인데 겨울만 되면 방안에 놓인 걸레가 꽁꽁 언다. 뱀이며 지네가 몸 위로까지 넘나들어 한겨울에도 꼭 모기장을 치고 자야 한다.

할머니는 "폭설이 내리는 겨울이면 무게에 눌린 지붕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져 눈이 녹을 때까지 며칠은 이웃집 신세를 져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지난해 최 할머니는 오천읍사무소 도움으로 기초생활수급자에 선정돼 매달 몇십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낡은 집을 수리하기에는 엄두도 못 내는 금액.

정봉영 포항시 오천읍장은 "국가 보조금도 신청해보고, 자원봉사단체 등 외부 지원도 구해봤지만 쉽지 않다. 당장 올겨울 할머니에게 큰 위험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발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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