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聖戰(성전)

'십자군 전쟁'은 중세 유럽의 기독교 세계가 성도(聖都) 예루살렘을 장악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자 감행한 대원정이다. 당시 전쟁에 참가한 유럽의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했기 때문에 '십자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십자군 전쟁은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배타적인 싸움이라는 점에서 종교전쟁이었다.

또한 성지를 탈환하려는 기독교 세력이나 이를 수호하려는 이슬람 세력이나 스스로의 입장에서는 성전(聖戰)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성전을 주창하고 신의 구원을 약속했던 십자군 전쟁의 이면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교황권 강화와 봉건영주 및 기사들의 새로운 영토 지배 야망, 상인들의 경제적인 욕구와 농민들의 신분 상승 희망 등이 얽혀 있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잡다한 동기와 신앙적 광기가 뒤섞이면서 온갖 약탈과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성전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인간의 탐욕 때문에 빚어진 참극이다. 십자군 전쟁은 그렇게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감행된 실패한 전쟁으로 역사의 기록에 남았다. 십자군 전쟁은 한편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을 대표하는 두 간판스타의 격돌이란 주목할만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십자군을 이끈 잉글랜드의 리처드 왕과 이슬람제국의 술탄 살라딘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살라딘은 이슬람을 야만시하던 유럽인들에게도 불세출의 영웅으로 오랜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되찾았을 때 유럽인들과는 달리 약탈과 방화 그리고 살육을 금지하고 포로들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또한 숙적인 리처드 왕과 쟁패를 다투면서도 신사적인 풍모를 지키며 서로간의 인간적인 호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도 그랬다. 살라딘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전장에 섰지만 두 문명의 화해와 공존을 모색한 평화주의자였던 것이다. 무릇 신이 원하는 성전이란 평화를 명분으로 한 전쟁이 아니라, 전쟁의 와중에서도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이 아닐까.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 IS의 비극적 테러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면서 '지하드'(성전)를 운운하는 광경을 신이 내려다본다면 뭐라고 할까. '성전'이란 부족한 인간이 제멋대로 선악(善惡)을 재단하며 신을 능욕하고 기만하는 가장 추악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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