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대통령의 말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되어야 한다"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그 은혜를 잊지 않는 것" "바른 역사를 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등의 말을 해 여러 해석을 낳으며 논란을 일으켰다. 청와대 참모와 각료들이 주로 대구경북에서 총선 출마에 나서고자 하는 상황에서 나온 말들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관련된 말들이다. 대구경북 현역 의원 상당수가 지난 19대 총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도한 공천을 통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는데 지금 다른 길을 가고 있으니 은혜를 '배신'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하니 은혜를 잊어버린, 진실하지 못한 현역 의원들 대신 대통령을 성실하게 보좌한 청와대 참모와 각료들이 진실하니 그들을 뽑아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청와대는 이러한 해석과 선을 긋고 있지만, 야권에선 대통령의 총선 개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연히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논란과 별개로 대통령에 대해 충실하면 '진실한 사람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배척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걱정스럽다. 대통령과 척을 진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가깝다고 해서 낙천 대상으로 삼고 그 자리를 대구경북 지역에 모종 붓듯이 측근들로 채우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정치적 저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지역에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현실에 지역 유권자들이 자괴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정치권을 물갈이하려 한다면 특정 지역만이 아닌 전 지역을 대상으로 합당한 기준과 절차에 의해 새 인물이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길 바라지만, 대통령이 정치적 저의를 담은 의도로 사용했다면 '진실'이라는 단어는 오염되고 만다. 또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논란을 벌이는 상황에서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바른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말은 매우 독선적이다. 교과서 국정화 반대론자들의 주장에도 타당한 이유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대통령이 정한 방향만이 바르다는 인식은 위험하며 갈등만 더 크게 할 뿐이다. 좋은 의미를 담은 단어가 진실하지 않은 바탕 위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될 때 그 낱말은 의미를 잃고 때가 묻게 된다. 정치 지도자들은 분열과 분노의 언어 대신 통합과 치유의 언어를 구사해야 하며 그 말이 진실하게 느껴져 공감을 얻어야만 울림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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