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기원은 '수집'과 '과시'라는 인간의 두 가지 욕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수집벽은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집안 냉장고의 냉동실만 열어 보아도 인간의 수집벽을 직감할 수 있다. 겹겹이 쌓여 있는 비닐들, 그리고 이미 '화석'이 되어 버렸을 정체불명의 음식들. 그야말로 냉동실은 모으고 보관하고자 하는 인간욕구의 생생한 증거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최초의 취미활동이기도 했던 우표 수집에 대한 열정에서도 수집과 과시라는 본능을 충분히 읽어 낼 수 있다.
이미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귀족들은 자신들의 학식과 교양, 그리고 미적 안목을 과시할 목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술품은 실용적 혹은 종교적 맥락에서 벗어나 순수한 감상을 목적으로 수집되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미술관은 이처럼 수집된 왕이나 귀족들의 개인 소장품들이 시민사회로의 요구가 절정에 달했던 격동기를 거치면서 대중들과 공유되면서 생겨났다. 특히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공공기관으로서의 미술관이 탄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태어난 지금의 미술관은 미술사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들을 '수집' '보존'하고 '연구'를 통해 그 의미를 확장시키며, 이를 '전시'의 형태로 풀어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술관의 이러한 기능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연구이다. 미술관의 본질적 역할은 연구에서 시작해 연구로 끝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를 통해 수집할 대상이 엄선되고, 연구를 통해 작품에 투영된 시대의 또 다른 얼굴이 밝혀진다.
'펼쳐 보인다'는 뜻의 전시(展示)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전시가 단순한 진열과 다른 이유는 면밀한 연구를 통해서 작품의 맥락이 풍부해지며, 이를 근거로 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조명(照明) 혹은 재조명된다는 데 있다.
미술 작품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작품이라는 거울을 통해 작가가 바라보는 혹은 작가가 보여주는 세상을 미적 형태로 경험한다. 미처 깨닫지 못한 시대의 얼굴이 작품이라는 거울을 매개로 '나'의 얼굴과 중첩될 때 교감과 소통이 일어난다. 세상에 그 어떤 미술작품도,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술 정신을 지향한다면, 그저 망막의 즐거움에 머무르지 않는다. 물질적 색채와 형태는 정신을 시각화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형식일 뿐, 그 너머 존재하는 작품의 종국적 가치는 연구를 통해서만이 현현(顯現)될 수 있다. 명작이 명작일 수 있는 이유도, 명작이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생성할 수 있는 이유도 연구에 있다.
전시의 정신은 연구에 있고, 연구 없이 무의미하게 진열된 작품들은 영혼 없는 '좀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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