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응답하라 1988' 다시 부는 복고 바람

'추억팔이' 식상? 콘텐츠 나름!

단기 유행에 그치거나 적당한 선에서 잦아들 거라 예상했던 복고열풍이 또 한 차례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 등의 프로그램이 과거 히트 가수들을 소환하는가 하면 tvN의 히트 브랜드 '응답하라' 시리즈가 1980년대를 배경으로 새 버전을 내놓으면서 복고 열기에 불을 붙이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응답하라 1988'은 극 중 사용된 1980년대 인기가요를 되살리는 것뿐 아니라 식품과 의류 등 여러 업계에 '추억 상품화' 바람을 불어넣으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한, 극장가에도 '빽 투 더 퓨쳐' '영웅본색' 시리즈 등 1980년대 히트작이 재개봉되고 관객은 이미 대사까지 외워버린 이 낡은 영화를 보기 위해 다시 극장을 찾는다. 대놓고 '추억'을 팔겠다는데 그 시대를 관통했던 세대가 열광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젠 그보다 젊은 층까지 이 현상에 동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과거문화를 소비하는 수요층이 넓어진 셈이다. 수차례 반복을 통해 식상하다는 말까지 듣고 있는 '추억팔이 콘텐츠'도 '잘'만 만들어내면 이 수요층을 공략할 수 있다.

◆'응답하라 1988' 열기, 이 정도면 사회현상

'내놓기만 하면 대박'이라 여겨지던 '응답하라'의 새 시리즈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 6일 첫 방송을 시작해 방송 4회 만에 1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고정 시청자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등 큰 인기를 얻었던 두 편의 전작과 달리 그 시절 젊은이들의 사랑에만 집중하지 않고 가족 이야기로 소재의 폭을 넓혀 한층 더 다양한 연령대를 공략하고 있다. 전편에 비해 더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데다 본격적인 러브라인이 등장하기 전이라 일각에선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사랑'뿐 아니라 가장과 주부의 고충을 보여주며 당시를 설명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더 '볼거리'가 많아졌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불과 4회 만에 캐릭터들은 적절히 자기 위치를 확보했고 내러티브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여기에 지난 인기가요들을 적절히 선곡한 후 영상에 버무려 전파로 뿌려대니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기엔 충분하다. 2회 후반부에 주요 캐릭터들의 어린 시절을 스틸 사진을 넘기듯 정지화면으로 보여주며 배경음악으로 동물원의 '혜화동'을 사용했는데, 적어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연령대라면 이 아련한 영상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인정한다. 꽤나 매력적인 콘텐츠다.

'응답하라 1988'이 방송된 후 극 중 삽입곡으로 쓰인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는 소리바다와 올레뮤직 등 유력 음원사이트 11월 2주 차트 1위까지 올라갔다. 원곡은 전인권이 불렀으며 극 중 배경인 1988년도에 나온 곡은 아니지만 드라마의 성격에 잘 맞아떨어지는 감성으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또 다른 삽입곡인 김필의 '청춘' 역시 5위권 안으로 진입해 '응답하라 1988'의 뜨거운 인기를 실감케 했다. 산울림의 원곡을 리메이크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외에도 극중 고경표와 류준열'이동휘 등 연기자들이 직접 안무까지 완벽히 소화해 화제가 됐던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는 각 라디오 프로그램의 단골 신청곡으로 떠올라 연일 리스너들의 귓가를 간질이고 있다. 이 여세를 몰아 소방차의 리더 김태형은 CBS 라디오에 출연해 오랜만에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이 방송에서 김태형은 "4, 5년 주기로 소방차가 새삼 거론되는데 사람들이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고 감회를 밝혔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새겨둔 여운이니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

단기 현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응답하라 1988' 방영 후 복고 관련 상품의 매출도 오르고 있다. 옥션 등 온라인 상품거래 사이트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점프슈트나 멜빵 바지 등 복고 상품들의 판매율 상승세가 거의 50%대에 달했다. 통바지와 청재킷, 터틀넥, 목폴라셔츠 등의 판매율 역시 눈에 띌 정도로 늘었다. 수동카메라는 옥션에서 무려 84%에 달하는 판매율 증가세를 보였다. '응답하라 1988'에도 등장했던 우표 등 과거 흔했던 수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 '쫄쫄이' '아폴로' 등 80년대에 '불량식품'이라 불리던 먹거리의 판매율도 50% 넘게 상승했다. 이 추세에 맞춰 유통업계에서는 복고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80년대 오락실에서 볼 수 있었던 아케이드 게임용 조이스틱, 베레모와 헌팅캡 등 아이템들을 다양한 형태의 기획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억' 소재 콘텐츠, 잘 만들어야 살아남는다

올해 초 MBC '무한도전-토토가' 특집이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면서 부작용도 만만찮게 속출했다. '토토가' 인기에 편승해 발 빠르게 1990년대 인기가수들의 무대를 기획하는 케이스가 넘쳐났고, 그만큼 완성도 떨어지는 공연이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유행에 발맞춰 '치고 빠지려는' 졸속 기획이 많았다는 설명. '토토가'처럼 정성들여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줄 생각은 하지 않고 '거저먹으려'고만 했으니 내용물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 '추억팔이도 끝물'이라는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다. 현재 방송계를 휩쓸고 있는 '쿡방' 열기가 유사 콘텐츠의 범람으로 '수명이 끝나간다'는 평가를 듣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도 있다. 과거 히트곡들도 끌어낼 만큼 끌어냈고 '그때는 그랬지'라고 설명할 만한 사건들도 20대들이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상태다. 말 그대로 이제 어떤 내용을 끄집어내도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는 쉽지 않을 거란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소재' 싸움이 아닌 '완성도' 싸움으로 가야 한다.

이미 '끝물'이란 말이 나오고 있는 와중에도 '응답하라 1988'이 큰 기대를 얻고 성공적으로 본방송을 시작한 것도, 결국 '소재'의 장점에만 집착하지 않고 드라마적 재미를 끌어내기 위한 제작진의 충실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히트 요인이 '소재'가 아니라 캐릭터와 내러티브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다만, 이번 시즌의 성과와는 별도로 '응답하라' 시리즈는 이번으로 끝내는 게 좋을 듯하다. 이미 '소재'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만큼 아무리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도 시즌4에 이르러 '식상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추억'을 소재로 내세우는 JTBC의 예능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는 처음부터 같은 고민을 안고 시작했다. 잊힌 과거 인기가요의 원곡 가수를 소환하고 이 노래를 새롭게 편곡해 '역주행송'이란 이름으로 발표하는 형식이라 기획 단계에서부터 '토토가'의 아류, '또다시 추억팔이'란 말을 들었다. 방송이 시작된 후에는 출연하는 과거 가수와 곡의 인지도에 따라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가 바뀌어 애를 먹기도 했다. 다행히 파일럿 시기를 거쳐 한 달간 본방송을 진행하면서 체계가 잡히고 유재석과 유희열 등 MC들도 프로그램의 성격에 걸맞은 재미를 끌어내기 시작해 차츰 시청률이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이 프로그램에서 AOA 초아가 리메이크한 1990년대 강현수 '그런가 봐요'가 음원 사이트 차트 1위까지 올라가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영화 '빽 투 더 퓨처'의 재개봉 마케팅 역시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미국을 중심으로 각국 관계자들이 자국 팬들의 성향에 걸맞은 형태의 공격적 마케팅을 펼쳐 재개봉 영화로선 이례적인 흥행성적을 얻었다. '추억팔이'를 하더라도 소재의 한계성을 극복해 새로운 공격 포인트를 찾고 내실을 다져야 원하는 타율을 기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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