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 9일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이스라엘 의회라도 가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열흘 뒤인 19일 아랍 국가원수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아랍은 1948년 이래 4차례나 전쟁을 치르며 이스라엘과 유혈 투쟁을 벌였다. 이집트 역시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시나이반도를 빼앗기고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도 패배해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였다.
그러나 이 무렵 아랍인들 사이에는 30년 무력 충돌에 대한 반감이 커갔고, 이스라엘도 점령한 땅을 돌려주라는 UN 결의안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사다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 간의 2박 3일 일정의 회담은 중동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었다. 사다트는 시나이반도를 돌려받았지만,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인정받지는 못했다. 사다트의 용기와 결단은 이집트 국민과 세계의 찬사를 받은 반면, 리비아와 시리아는 '아랍의 배신자'로 낙인 찍어 단교 통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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