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신용카드라는 '물건'이 등장했다. 굳이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조그마한 플라스틱 조각 하나만 건네면 상품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도 원하는 걸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2009년쯤,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등장했다. 휴대 전화로 인터넷은 물론 컴퓨터가 하는 온갖 것들을 손바닥만 한 기계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며 열광했다. 그로부터 불과 5, 6년밖에 지나지 않은 현재, '모바일 페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이제는 현금은 고사하고 그 조그만 플라스틱 조각조차도 들고 다닐 이유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당장 TV 광고만 봐도 우리는 지갑 광고보다 모바일 페이 애플리케이션 광고가 더 많이 나오는 현실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 덕분에 우리는 손 안에서 상품 구입부터 지불까지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이 편해졌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물건을 사고파는 방법이 바뀐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음을 이제는 느낄 수 있다.
이번 주는 요즘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모바일 페이'에 대해 알아봤다. 일단 전쟁터가 돼 버린 모바일 페이 시장에 대한 이야기와, 이게 만들어갈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지 알아봤다. 기자가 직접 대구 시내에서 모바일 페이를 써본 경험담과 함께 모바일 페이가 넘쳐나는 이 상황에서도 현금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스마트폰 하나면 결제 OK!…"시장 선점하라" 전쟁 시작됐다
"전쟁이 시작됐다."
현재 '모바일 페이'라 불리는 모바일 '간편 결제' 시장을 한마디로 이르는 말이다. 모바일 간편 결제 시장은 지난해부터 '핀테크'(fin-tech'금융과 정보기술이 결합된 기술을 이르는 말)의 선두주자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영역이 점점 확장돼 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간편 결제 시장 규모는 5조7천200억원으로 2년 전인 2013년 1분기의 1조1천270억원보다 5배 이상 커졌다. 또 모바일 페이 애플리케이션과 시스템의 숫자는 현재 출시된 것만 해도 20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모바일 페이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만하다.
◆모바일'IT'금융기업 모두 기웃거리는 시장
현재 20개가 넘는 모바일 페이를 개발한 업체들은 삼성전자(삼성 페이), 애플(애플 페이)과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부터 LG유플러스(페이나우)와 같은 통신사, 네이버(네이버페이), 다음(카카오페이)과 같은 포털사이트, 신세계(SSG페이) 등과 같은 유통업체, G마켓(스마일페이), 티몬(티몬페이)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 NHN엔터테인먼트(페이코), SK플래닛(시럽페이) 등과 같은 IT'게임업체, 그리고 현대카드(현대카드 앱카드)와 같은 국내신용카드사까지 대략 7종류로 분류가 가능하다.
이처럼 모바일, 신용카드와 관련된 대부분의 업체가 모바일 페이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데에는 각자 다른 속내들이 존재한다. 스마트폰 제조사는 단말기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자신이 만든 모바일 페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 단말기 판매량도 덩달아 늘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갤럭시 S6 이상의 모델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삼성 페이는 꽤 긍정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유통업체나 온라인 쇼핑몰은 충성도 높은 고객 확보가 목표다. 일단 모바일 페이나 간편 결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결제 이탈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포털사이트 등 IT업계엔 모바일 페이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자 신성장 동력으로 인식된다. 특히 온라인 게임 사이트인 '한게임'을 운영하는 NHN엔터테인먼트가 새로운 사업으로 등장시킨 것이 바로 '페이코'다.
저마다 다른 속내지만 모바일 페이 시장에 대한 경쟁을 치열하게 만드는 공통된 이유라면 '선점 효과'를 들 수 있다. 한 소비자가 특정 결제 방식에 익숙해지면 그것만 계속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제 정보'라는 빅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마케팅이나 부가 사업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모바일 페이에 뛰어든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한 것이다.
◆기술 표준 통일, 가맹점 확대 등 갈 길 멀다
모바일 페이를 개발한 업체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지갑이 필요 없는 삶이 가능한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아직 지갑을 폐기시키기에는 갈 길이 멀다.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이 국내 소비자 560명을 대상으로 간편 결제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간편 결제를 한 번 이상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79.6%(446명)였다. 하지만 사용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 '하루에 한 번 이상 사용한다'고 답한 사람은 4%에 불과했다. 이는 당장 오프라인 사용처가 그리 많지 않고 사용방법도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10면 기사 참조)
더 큰 문제는 표준 기술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바일 페이 업체가 난립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NHN엔터테인먼트의 '페이코'는 NFC(비접촉식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의 약자로 10㎝ 안팎의 가까운 거리에서 단말기끼리 정보를 제공받는 기술)결제 방식을 이용하지만, 이는 스마트폰에 티머니(T-money) 사용이 가능한 유심 칩이 있어야 쓸 수 있다. 삼성 페이는 갤럭시 S6 이상의 기종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신세계그룹 계열의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에서는 삼성 페이를 쓸 수 없고 신세계 그룹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SSG페이'로만 결제가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객 입장에서는 어디서 어떤 페이 서비스를 이용해야 할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특히 가맹점 확대와 결제 기기 보급이 '페이 전쟁'의 승패는 물론이거니와 모바일 페이의 활성화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페이는 신용카드 마그네틱 선에 있는 정보를 그대로 읽고 이를 자기장으로 만들어 카드리더기에 가져다 대면 카드리더기가 이를 인식하는 방식인 'MST'(마그네틱 보안전송) 방식을 쓰기 때문에 일반 카드리더기에도 사용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NFC 또는 바코드 인식 기술을 사용한다. 문제는 바코드 인식 기술은 가맹점 확대가 변수고, NFC 기술은 아직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술 표준이 나오지 않았다.
전쟁은 벌어졌지만 아직 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모바일 페이 전쟁터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행방은 결국 사용자에게 달려 있다. 사용자가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기술이 결국 선택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 누구도 선택받지 못한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을 기술과 업체는 과연 어디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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