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가 남이가" 외치던 YS…재임 중 TK 홀대 '배신의 정치'

달성 위천국가공단 조성 거부, 삼성車 공장 대구 아닌 부산에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구 신천에서 열린 군중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김영삼 민자당 후보.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구 신천에서 열린 군중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김영삼 민자당 후보.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한 대구경북(TK)민들의 심중은 애증이 교차했다. YS가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민주주의 기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대구경북 출신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면서 TK가 바라보는 YS의 상은 부산경남(PK)과는 다소 다르다. 과단성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TK도 YS를 응원했지만 YS가 대통령이 되면서 TK의 입지를 좁히거나 숙원사업들이 암초에 부닥치면서는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정치적 애증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TK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YS의 대통령 선거 구호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재임 기간 중에는 정서상 YS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YS가 모든 정치적 행보에서 지역 출신의 대통령을 민주화의 공적으로 간주하면서 부닥치자 대구경북민들은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공격을 TK에 대한 공격과 동일시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비교적 원만하던 TK와 YS의 관계는 대통령이 된 후 눈에 띄게 금이 갔다. TK를 대표하던 정치인이 하나둘씩 정치 일선에서 밀려나자 TK 민심은 이상 기류를 보였다. YS 취임 첫해 대구 동을 보선에서 엇나가기 시작한 TK 민심은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에서 폭발했다. YS의 공천을 받은 여당 후보가 대구시장선거에서 2등도 아닌 4등을 하는 참사가 일어났고 이듬해 총선에서는 대구 국회의원 13석 가운데 자민련에 8석을 몰아줬다. 결국 YS 재임 기간 중 대구에서 치러진 선거 전패라는 기록을 남겼다. YS 정부 핵심에서 나온 'TK는 30년간 잘 해먹지 않았느냐'는 비아냥도 지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에는 반YS 정서가 TK 정치권을 지배했다. 호사가들은 이를 'TK 정서'라며 '권력의 금단(禁斷)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도 소외

대구와 부산은 20여 년 전 달성군 위천국가산단 조성을 둘러싸고 10여 년간 '해답' 없는 공방을 벌인 적이 있다. 대구는 1995년 달성군에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해 기업 유치에 나서겠다며 정부에 위천국가산단 유치를 건의했다. 하지만 낙동강 수질 오염을 이유로 부산은 반대 운동을 폈고 YS 정부도 위천국가산단 지정을 해주지 않았다.

대구에 오려던 삼성자동차 공장도 부산으로 갔다. 1990년 초반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 부지로 대구를 선택하려다 YS가 대통령이 된 후 부산을 선택했고 지역민들의 거센 분노에 직면했다. 삼성은 상용차를 차선책으로 내놨지만 이마저도 2000년 퇴출됐다.

KTX 대구 구간 노선 지하화 사업도 지역민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1990년 대구 도심 구간 통과 방식은 지하화였지만 1993년 YS 취임 후 지상으로 변경됐다. 민심은 이 또한 TK 홀대라고 반발했다. 이후 지상과 지하를 오가던 경부고속철도 도심 통과 구간 방식은 지상화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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