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준의 대담]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전 덕성여대 총장

동화 내용 고쳐 남녀평등 교육, 스웨덴 정부 노력 보고 배워야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참여정부 시절 여성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2기에 걸쳐 덕성여대 총장을 지냈다. 그러나 장관과 총장 이전에 여성운동가이다. 1983년 결성된 진보적 여성운동단체였던 여성평우회 공동대표와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평생을 진보적 여성운동에 헌신해 왔다.

여성운동가 사이에서의 별명은 '지칼'. 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스스로 존중하는 신념이나 가치를 지키는 일에는 '칼' 같지만,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은 화합형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미소와 논리로 상대를 설득한다.

장관 시절에는 호주제 폐지와 성매매방지법을 주도했다. 편견과 냉소와 싸워야 하는 힘든 과제들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잘해 내었다. 어느 언론사가 실시한 장관 업무평가와 미래업무 기대치 조사에서 1위를 하기도 했다. 또 덕성여대 총장을 하면서는 만성 분규 사학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그의 역량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이다.

지금은 다시 여성운동으로 돌아갔다. 여성사회교육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여성평화운동에도 관여하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라 할까, 아니면 다소 진보적인 이야기라 할까? 그가 생각하는 여성과 가족의 문제를 매일신문 서울지사에서 들었다.

김병준: 여성 차별 문제, 어떤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 않나?

지은희: 교육수준이나 문맹률 등에 있어서는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하는 일의 내용이나 지위에 있어서는 문제가 많다. 특히 중요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영역에 있어서의 참여율은 매우 낮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성격차지수(性隔差指數), 즉 'Gender Gap Index'의 경우 142개국 중 117위로 되어 있다.

김병준: 그 정도로 나쁘나?

지은희: 물론 이보다 좋은 점수를 얻는 지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를 이 정도로 낮게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실제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김병준: 많은 사람이 유교적 전통이 강하기 때문이라 하는데?

지은희: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가부장제의 문제가 있다. 사실 초기 유교는 남녀 차별 문제에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심하지 않았다. 여성의 상속권을 인정했고 제사에도 참여하게 했다. 그러던 것이 조선 중기 이후 가부장제가 강화되면서 여성을 차별하는 철학과 사상으로 변해버렸다.

김병준: 유교를 포함한 동양 사상이 이 문제에 있어 서양 사상보다 훨씬 덜 차별적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최소한 이브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존재라 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쨌든 유교 자체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더 문제라는 말, 이해가 된다.

지은희: 가부장제라는 게 그렇다. 한 사람 내지는 한 집단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다른 사람 내지는 다른 집단을 지배구조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다. 계급 나이 성별 종족 등을 구별하며 배제해 나가게 되는데, 여성은 쉽게 그 대상이 된다.

김병준: 그래서 서구 사회에서도 강한 차별이 존재해 왔던 것이고?

지은희: 그렇다. 서구 사회 역시 가부장제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다. 정치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음은 물론 재산권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산은 남성의 몫이었고, 이를 자기 자식에게 상속하고 싶은 남성들은 여성을 결혼으로 묶고 집 안에 유폐, 즉 가두게 되었다.

김병준: 흥미롭다. 가부장제와 사유재산 제도, 그리고 결혼…. 그래서 안에서는 여성을 묶는 유폐의 논리가, 또 밖에서는 지배권 행사나 사회경제적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배제의 논리가 작동했다는 말 아니냐.

지은희: 그래서 여성학 쪽에서는 여성 차별이 가부장제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원리가 결합으로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본다.

김병준: 자본주의의 발달이 여성 인권을 확대시키기도 했지 않나? 자본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일단 여성을 집 밖으로 끌어내지 않았나?

지은희: 맞다. 산업사회로 이전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큰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생산 활동이 집 밖에서 이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생산현장으로 들어갔고 이어 여성들이 따라 들어갔다. 특히 1, 2차 세계대전으로 남성들이 많이 희생된 이후 여성들이 대거 산업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러면서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 결과 참정권도 얻게 되었다.

김병준: 우리도 그런 과정을 겪은 것 같다.

지은희: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생산 과정에 투입되었고, 그러면서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노동 착취 등 힘든 과정을 겪기는 했지만 목소리도 계속 커졌다.

김병준: 사실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지배 구조의 중심, 즉 중요한 결정에 차별 없이 참여하는 수준까지는 못 갔지만….

지은희: 일은 시키지만 갖가지 논리와 명분으로 중요한 자리를 주지 않고 있다. "결혼을 하면 일을 잘 못한다" 따위의 논리들이다. 그 결과 남성에 비해 월등히 많은 여성이 단순직과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 또 보수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구조가 우리 모두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 많다는 사실만 해도 그렇다. 궁극적으로 장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에 따라 소비도 줄이게 된다.

김병준: 앞으로 점점 나아지지 않겠나. 사실 최근 들어서도 사법시험이나 기자시험 등에 있어 여성이 더 많이 합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은희: 진입할 때는 시험으로 하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그냥 나아지지 않는다.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들을 봐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한 결과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었다. 여성의 잠재되었던 능력이 발휘되니 사회 전체의 생산성도 크게 올랐다. 우리도 이런 노력이 있어야 한다.

김병준: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나?

지은희: 캐나다처럼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할 수도 있고 행정부 고위직에 승진할당제를 적용할 수도 있다. 정치 부문도 마찬가지다. 비례대표 의석 반을 주는 것을 넘어 일정 수의 지역구 공천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 아울러 민간 부문의 차별적 행위도 보다 적극적으로 시정해야 한다. 또 노동 시간을 줄여 여성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비정규직을 줄여 여성 일자리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김병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우리의 관념도 바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오래전의 이야기이지만 다섯 살짜리 딸이 갑자기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는 거다. 이유를 물었더니 유치원 병원놀이에서 의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여자아이는 간호사를 하는 게 좋다면서 간호사를 시켰다는 것이다.

지은희: 이런 것도 바로 국가가 할 일이다. 스웨덴과 같은 나라는 동화의 내용까지 바꾸면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치권도 노조도 별 관심이 없다. 이게 문제다.

김병준: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성이 더 그런 것 같다.

지은희: 세계적 추세다. 생활 능력이 높아지고 권리 의식이 신장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굳이 서로 묶여 있을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여기에 우리의 경우 직장에 나가면서 가사 일까지 다 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직장에서대로 차별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왜 없겠나?

김병준: 가족제도가 무너지는 것 같다.

지은희: 무너진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무너지는 게 아니고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는 것이다. 혼자서 사는 것도 가족이고, 법적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것도 가족이다. 나쁘게 생각할 것 없다.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병준: 그래도 그렇지, 유럽의 경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외출산이 50%에 육박한다. 둘 중 하나는 엄마 아빠가 법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는 아예 동거조차 하지 않는 상태에서 태어난다는 이야기이다.

지은희: 결혼하고 이혼하고 하는 것보다 그냥 살다가, 더 강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법적 결혼을 하고, 아니면 헤어지고 하며 사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도 서로 그렇게 살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도 누구도 비혼모라 하여 특별한 눈질을 주지 않는다.

김병준: 미혼모가 아니고 비혼모라? 어쨌든 우리는 아직 이 문제에 있어 상당히 전통적이다. 혼외출산 비율이 1~2%밖에 되지 않는다.

지은희: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인데, 비정상적인 일로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렇게 태어나는 아이와 그 어머니를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김병준: 국가가 가족을 해체시키는 일에 앞장을 선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지은희: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낳든 그 아이를 우리 사회 미래의 성원으로 받아들여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공보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유럽 국가의 경우 비혼모 자녀의 경우 양육 지원과 어머니에 대한 직업 지원 등 오히려 더 세심한 배려가 제공된다.

김병준: 공보육 문제는 많은 분이 공감하고 있다. 다만 돈이 문제다.

지은희: 아이 하나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고, 또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겠는가? 출산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돈 문제는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남북이 서로 전쟁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해도 국방비를 그만큼 줄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김병준: 한 가지 더 물어보자.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등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적, 비윤리적인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은희: 간단히 이야기하자.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엄하다. 이건 세계가 합의한 것이다. 남녀, 종교, 인종이 따로 없다. 굳이 여성 문제로 볼 것도 없다. 그냥 사람으로, 또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로 보면 된다. 왜 때리고 희롱하고 돈으로 사나? 그러면 안 된다.

김병준: 결국 교육의 문제인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인가?

지은희: 교육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 된다. 폭력만 해도 기본적으로 위계 관계에서 나오기도 하고, 억압적 환경이나 그에 대한 사회적 분노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이런 부분을 고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단속할 것은 제대로 단속하고 처벌해야 한다. 이 모든 게 국가의 역할이다.

김병준: 성매매의 경우 단속하면 성폭력이 오히려 는다는 주장이 있다.

지은희: 말이 안 된다. 성매매가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성폭력도 많다. 성매매가 여성을 성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는 돈으로, 또 하나는 폭력으로, 수단은 다르지만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은 똑같다. 둘이 같이 간다.

김병준: 여성부 장관 시절 성매매방지법을 주도적으로 만드셨다. 그런데 별 효과가 없다는 말이 있다.

지은희: 핵심은 업주를 단속하여 이윤 동기를 없애는 데 있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업주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있다. 강하게 단속하고 처벌해야 한다. 태국 다음으로 성매매가 많은 나라다. 이런 오명을 언제까지 짊어지고 갈 것인가?

김병준: 낙태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지은희: 태아도 생명이다. 종교적으로 반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쪽이든 저쪽이든 부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가 일률적으로 금할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김병준: 대구가 여성 문제나 가족 문제 등에 있어 꽤 보수적인 편이다. 그렇지 않나?

지은희: 대구도 변하고 있다. 남아 선호 문화를 보자.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대구에서 출생하는 셋째 아이의 성비는 220~230이었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의 2.2~2.3배가 넘었다는 뜻이다. 다른 지역 평균은 높아 봐야 140~160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최근(2014년) 100.6으로 떨어졌다. 전국평균 106.7보다 더 낮은 숫자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대구는 예전의 대구가 아니다. 크게 변하고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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