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의 산이 동서남북으로 펼쳐졌다는 영남알프스. 10봉 3령(嶺)의 호위를 받으며 낙동정맥의 중심축으로 우뚝 서 있다. 넉넉한 품을 열어 사계절 내내 등산객들을 맞아들이지만 그중 가을에 존재 가치가 가장 빛난다. 사자평과 신불평원으로 대표되는 영남알프스는 최고 가을 억새 명소로 손꼽힌다. 곧 마지막 한 장 달력을 마주할 시점. 가을 끝자락이라고 하지만 아직 산엔 단풍 흔적이 남아 있다. 근교에서 가을 추억을 더듬고 싶다면 영남알프스가 좋은 대안이 될 듯싶다. '엄홍길과 함께하는 한국 명산 16좌'가 이번 달엔 울주 신불산에서 막바지 가을을 '추억'하고 왔다.
◆전국에서 버스 30여 대 등억리 집결
밀레와 함께하는 '엄홍길 16좌' 3차 산행 집결지인 울주군 등억리 주차장엔 20일에도 전국에서 관광버스 30여 대가 집결해 성황을 이루었다.
'세계 산악영화제'를 준비 중인 신장열 울주군수가 연단에서 전국의 산행객들을 맞았다. 엄 대장은 이 영화제 홍보대사를 맡아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11월 초에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엄 대장은 "엄홍길 휴먼재단에서 네팔에 10번째 오지 학교를 건립하고 돌아왔다"며 "히말라야에서 받아 온 좋은 기운을 여러분께 나눠 주겠다"며 립 서비스를 날렸다.
1부 개막행사, 기념 촬영이 끝나고 산행객들은 등억리 코스로 접어들었다. 입동(立冬)이 지난 절기지만 숲엔 아직도 단풍이 남아 있었고 엊그제 내린 비 덕에 임도 옆 물소리가 계곡을 크게 울리고 있었다. 급경사길 홍류폭포 계곡을 1시간 반쯤 걸어 드디어 간월재에 올라섰다.
◆간월재 협곡 억새 물결에 탄성
영축산에서 기맥(起脈)하여 북상하던 영남알프스는 신불산을 넘어서며 큰 협곡을 펼쳐 놓는다. 이곳이 '바람도 쉬어간다'는 간월재다.
'달(月)을 바라보는(看) 재'라는 다소 낭만적인 이름을 달고 있지만 지명과 달리 이곳은 이 지역 민초들의 고된 삶의 현장이었다. 울산의 소금장수와 해산물 상인들이 내륙으로 가기 위해 오르던 곳이고, 언양 소장수, 배내골 장꾼들이 등짐을 지고 울주 바닷가로 향하던 장소였다.
재에 올라서자 간월산 쪽 경사와 신불산 쪽 언덕에 억새 능선이 융단을 깔아놓은 듯 펼쳐져 있다. 억새와 눈맞춤을 하고 오늘 등정 목표인 신불산을 향해 오른다. 산객들은 또 한 번 급경사를 만나 가쁜 숨을 몰아쉬지만 고도를 높여가며 펼쳐지는 발아래 풍경에 피로를 잊는다.
간월재의 광활한 풍광과 억새의 은빛군무에 취한 관객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 경치를 담기 바쁘다.
포항에서 온 박말남(50'포항시 상대동) 씨는 "평소 성격이 급한 편인데 산에 오면 저절로 안정을 찾게 된다"며 "바람에 몸을 맡기는 억새를 보면서 처세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고 소감을 말한다.
◆신불산 정상에 서면 영남알프스 한눈에
엄 대장의 '심장엔진'은 경사에서 빛을 발한다. 신불산 급경사 길을 날듯이 올라 단숨에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신불산은 영남알프스 동쪽 능선의 주봉 격이다. 신불산에서 이어지는 봉우리는 배내봉을 지나 천황산, 재약산, 표충사로 이어진다. 덕분에 사방으로 조망을 열어 시원한 눈맛을 선물한다. 동으로 울주, 서로 배내골과 멀리 밀양 사자평까지 산군들을 펼쳐 놓았다.
신불산의 가장 큰 볼거리는 영축산 능선까지 길게 펼쳐진 신불평원이다. 특히 평원을 하얗게 덮고 있는 억새는 최고의 장관이다. 간월재 억새가 U자 계곡 경사면에 펼쳐진 군락이라면 신불산 억새는 산정을 따라 펼쳐진 대평원이다. 면적도 3.306㎢(100만 평)를 헤아린다고 하니 단일 군락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가 아닌가 한다.
간월재와 마찬가지로 이곳 신불평원도 옛 민중들의 회한이 서린 곳이다. 물이 풍부하고 내륙과 바다를 잇는 교통의 요지인 덕에 삼국시대부터 전략의 요새였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휘하의 승군, 의병들의 진지였고 6'25 때는 국군에 쫓기던 빨치산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현대사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였던 좌우의 대립, 국군과 빨치산은 이념도 다르고 지향도 달랐지만 자연은 그 품을 열어 모두를 맞아들였던 것이다.
◆'군집의 미학' 억새와 영남알프스
다년생 벼꽃식물인 억새. 식물로서 억새는 '변덕스런 여성'의 상징이지만 군집을 이루면 가을의 전령도 되고 계절의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영남알프스도 비슷하다. 청도, 밀양, 울주의 27산 10봉 3령들도 단순 나열에 그쳤다면 지역 '산 중의 하나'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남의 산으로 군집을 이루면서 영남알프스라는 명산맥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나저나 가을을 수놓았던 억새, 단풍이 자연으로 회귀를 서두르고 있다. 이제 마지막 가을을 송별하고 싶다면 가까운 산으로 올라보자. 얼마 남지 않은 억새꽃들이 열반에 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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