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평생을 바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에 온 국민이 애도의 뜻을 보내고 있다. 대구경북민 역시 살아생전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열정에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생애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선택은 엇갈렸다.
지난 1987년 12월 16일 치러진 제13대 대통령선거에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김 전 대통령은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27만4천880표(지역 내 득표율 24.28%)와 47만189표(28.17%)를 수확했다. 2만9천831표(2.38%)와 3만9천756표(2.63%)를 얻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보다는 지역민으로부터 더 많은 선택을 받았지만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의 득표(80만363표'70.69%, 110만8천35표'66.38%)에는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노태우 후보는 자신의 전국 총 득표수(828만2천738표) 가운데 23%를 대구경북에서 챙겼지만 김 전 대통령은 11.7%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이는 지역 출신 대선 후보(노태우 후보)를 향한 애정, 보수 성향의 정당을 찍어오던 '관성'(1번'다수당), 여권의 광범위한 조직력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1992년 12월 18일에 치러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통합' 후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한 김 전 대통령은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69만245표(59.59%)와 99만1천424표(64.72%)를 쓸어 담았다. 전국 득표수(997만7천332표)의 16.8%를 대구경북에서 챙겼다. 물론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당선에는 무려 306만5천여 표(전국 득표의 30.7%)를 몰아준 부산경남의 표심이 크게 작용하긴 했지만 대구경북의 호응이 없었다면 800만 표 이상을 득표한 김대중 민주당 후보의 추격을 따돌리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서울에서 김대중 후보보다 30만 표가량 득표수가 적었다.
YS 당선 후 민자당 내 대구경북 인사들이 주축이 된 민정계는 2선으로 밀리며 '여당의 비주류는 야당보다 서럽다'는 정치권의 속설을 톡톡히 절감했다. 아울러 지역 출신의 대통령들이 잇따라 단죄되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패권주의를 전제로 얘기하면 김 전 대통령의 3당 통합 이후 대구'경북'부산'경남이 뭉치면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다수세력으로 건재하고 있다. 다만 새누리당이 지역연합을 넘어 시대적 가치를 제시하는 정당으로 진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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