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이 겨울, 동해로 가자

겨울이 되니 인정(人情)이 넘쳐난다. 바닷가 사람들이 사는 곳이 바로 그러하다. 겨울 바다라고 하면 왠지 쓸쓸하고 황량한 느낌을 주지만, 동해안 주민들에게는 겨울 바다야말로 신의 축복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징어, 대게, 과메기 같은 해산물이 쏟아져 나오는 계절이다. 가장 활력이 넘치고 풍족한 때다. 동해안 어촌의 술집에도 평소와 다르게 손님이 확 줄어든다. 한몫 챙겨놓아야 한 해를 푸근하게 보낼 수 있기에 술 먹고 노닥거릴 시간조차 없다. 세찬 바람에 몸은 떨리고 고달프지만 마음만큼은 따사롭다.

예로부터 바닷가에 살면 굶주릴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구차한 짓이긴 했지만, 어항에 떨어진 물고기를 줍기만 해도 먹고살 수 있었다. 요즘에도 포항 구룡포항에 가면 그런 분들이 몇몇 있다. 오징어는 살아있는 채로 어선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트럭에 실린다. 오징어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바다나 땅바닥에 떨어질 때 갈고리를 이용해 재빠르게 주워가는 전문가(?)들이 있다. 선주나 화물차 운전사도 관례적으로 그냥 눈감아주는데, 이분들의 수입은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낫다고 한다. 넉넉한 바닷가의 인심이 아니겠는가.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필자도 덩달아 마음이 바빠진다. 어업 종사자는 아니지만, 포항에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로 과메기, 대게 부탁이 들어오곤 한다. 처음에는 귀찮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능력껏 보내준다. 비싼 대게 부탁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과메기를 풍족하게 보내주는 것도 필자만의 얍삽한 작전이다. 과메기는 바닷바람이 많이 부는 12월쯤, 대게는 속살이 차는 1월 중하순쯤 돼야 제맛이 나니 그때를 맞춰 부탁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과메기 경우 산업화에 성공해 사철 먹을 수 있는 바닷가의 효자 상품이다.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지난해에만 5천440t, 760억원어치가 팔렸다. 포항과 인근에 직원 20, 30명 이상을 고용한 생산업체가 30곳이 넘는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얼마 전 지인이 알려주길 "서울 강남의 과메기 집에 가니 손님이 바글바글해 자리가 없더라. 근데 과메기 몇 토막 담아놓고 2만원쯤 받던데 포항에 비해 서너 배 비싸더라"고 했다. 포항에서 과메기를 먹으면 내륙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남다른 멋이 있다. 바닷가 식당에 자리 잡고, 배추에 과메기 한 조각과 미역, 파, 고추, 마늘로 쌈을 싸 먹으면 정말 환상적이다. 예전에 주인아주머니가 통과메기를 세로로 죽죽 찢어 야채로 쌈을 해주던 작은 식당도 있었는데, 그런 곳을 찾으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그 손맛과 과메기의 두툼하면서도 아싹한 질감, 고소한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바닷가에는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어민들의 삶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중국산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우리 어족자원은 자꾸 말라가고 있다. 남획(濫獲)의 결과다. 예전에 대게는 연안에도 널려 있었는데 이제는 아주 먼바다에 나가야 한다. 러시아 해역이나 일본 오키제도 주변에 가야 큼직한 대게를 잡을 수 있으니 가격만 자꾸 올라간다. 오징어도 10월에 많이 잡혀야 하는데 중국 어선 탓인지, 기후변화 탓인지 이달 들어서야 잡히기 시작했다. 구룡포수협의 올해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고기가 잡혔다 안 잡혔다 하고, 어종도 계속 바뀌니 어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곳간에 인심 난다'는 옛말이 있듯, 인심 좋고 넉넉한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이번 겨울에는 가족, 연인과 함께 동해안을 돌아보길 권한다. 울진, 영덕, 포항, 경주로 이어지는 경북 동해안은 천혜의 절경이다. 겨울 바다의 낭만에다 과메기, 대게, 이시가리(돌가자미), 복어 같은 겨울 별미를 맛보면 어민들의 시름까지 덜어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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