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젠트리피케이션

영화 '퍼시픽 하이츠'는 고급주택가에 집을 장만한 젊은 커플과 집을 가로채려는 교활한 세입자의 다툼을 그린 스릴러 영화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치밀하게 전개하면서 공포와 무기력감을 극대화시켜 호평을 얻었다. 특히 법과 사람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마이클 키튼의 악랄한 연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샌프란시스코의 고급주택지역인 퍼시픽 하이츠(Pacific Heights)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집주인이 많은 수리비와 융자금 때문에 방을 세놓으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20여 년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의문점이 있었다. 선금 지급을 조건으로 임대차 계약을 했지만 돈도 주지 않고 방을 가로챈 세입자를 법으로 보호해야 하느냐는 물음이다. 실제 영화에서도 무단 세입자의 강제 퇴거를 위해 법정 공방을 벌인다. 하지만 거꾸로 집주인이 부당 퇴거 요구와 정신적 고통, 인격 침해 등을 이유로 고발당하고 만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특히 계약관계로 지탱하는 복잡한 대도시에서는 흔히 발생하는 문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뒤바뀌기도 한다.

서울시가 최근 도시문제로 등장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막기 위해 전국 최초로 시범정책을 내놓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 재개발로 임대료가 급등해 기존 임차인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으로 더 심화하면 도시 공동화로 이어진다. 서울의 대학로와 신촌, 북촌'서촌 등 여러 곳에서 이 현상이 불거지면서 그동안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았다.

도시재생구역인 해방촌 경리단길은 상가가 몰리고 유동 인구가 급증하자 최근 10년 새 임대료가 최대 650%까지 올랐다고 한다. 예술인 작업 공간과 김광석거리 조성으로 유명세를 탄 대구 방천시장이나 영화 '국제시장' 흥행 덕에 임대료가 급등한 '꽃분이네'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건물주'임차인 상생협약과 예산 투입을 통한 상가 매입, 소상공인 저리 융자, 5년간 임대료 동결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젠트리피케이션 특별법 제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 대구도 이 같은 현상이 점차 확산될 것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생존권을 위협받는 소시민을 보호하고 가진 사람들에게는 재산권과 돈의 논리가 아니라 상생의 신사협정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해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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