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암과 외로움으로 아픈 정창규 씨

아들 죽은 후 삶 등한시…여관서 홀로 투병 생활

여관에서 홀로 간암 투병 중인 정창규 할아버지는 날이 쌀쌀해지면서 사람이 그리워진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여관에서 홀로 간암 투병 중인 정창규 할아버지는 날이 쌀쌀해지면서 사람이 그리워진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대구의 한 허름한 여관에서 지내는 정창규(가명'69)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여관에서 15년째 장기투숙 중이다. 젊은 시절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던 할아버지는 어두컴컴한 여관에서 홀로 투병 중인 자신의 처지가 믿기지 않는다. 젊은 시절엔 성공한 사업가로 업계에서 꽤 유명했다. 또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늘 도움을 베풀어 주위에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한때 부인, 두 자녀와 행복하게 살았던 할아버지는 세월이 지날수록 말 붙일 사람이 없어 더욱 그립다. "혼자서 암과 싸우는 것보다 힘든 건 외로움을 이겨내는 거예요. 날이 쌀쌀해질수록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그리워져요."

◆화려했던 젊은 시절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대로 큰 부를 쌓은 집안의 장남으로 젊은 시절 돈 걱정을 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대구로 와 장사, 사업을 시작했다. 주유소, 목욕탕 등 대구 곳곳에 큰 가게를 열었다. 그 후 섬유'목재 수출 등 손을 대는 사업마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 주위 이웃이 힘들게 사는 건 못 보는 성격이었다. 고향 후배, 친구, 먼 친척 등 누군가 어렵다고 하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도와줘 늘 '좋은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다 아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집단 폭력 사건에 휘말렸고, 그 과정에서 머리를 심하게 다친 것이다. 그 길로 아들은 병원에 한 달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수사를 더디게만 진행했다. 또 범인에게 아무런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 일은 아직도 할아버지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다.

"아들이 죽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어요. 그때부터 가족과 일은 등한시한 채 술과 담배에 찌들어 수십 년을 살았어요."

불행은 연이어 일어났다. 함께 슬픔을 나눴던 부인과 딸이 얼마 안 가 할아버지의 곁을 떠난 것이다. 밤새도록 이어지는 술주정과 매일 크고 작은 사고로 경찰서에 불려가는 할아버지를 힘들어했다. 게다가 외환위기 때 친구들에게 서준 수억원의 빚보증으로 자동차, 집, 재산을 모두 잃었다.

"화려한 삶을 살다가 세상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어요. 전 재산을 잃고 나서 저 자신을 돌아보니 가족, 친구들은 모두 제 곁을 떠난 뒤였어요."

◆홀로 힘겨운 투병 생활

전 재산을 잃고 부인과 딸마저 떠난 뒤 할아버지는 여관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어려운 처지가 되자 평생을 어울렸던 친구, 후배들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동네를 산책하고 신문과 책을 읽는 것으로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생애 전환기 건강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간염, 간경화를 앓아왔는데 최근 암으로 진행된 것이다.

"암 판정을 받고 '이제는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남아있는 주위 친척, 친구들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최소한의 수술, 치료만 받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할아버지는 올해 초 두 차례 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비, 입원비가 문제였다. 수술 후 입원 보름 만에 5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나오자 할아버지는 스스로 병원을 뛰쳐나왔다. 병원에서 추가 수술과 항암치료를 위해 퇴원을 강하게 만류했지만 할아버지는 병원비 생각뿐이었다. 의료급여가 안 되는 항암주사도 문제였다. 수술 후 전이를 막으려면 항암 주사를 3차례 맞아야 했지만 1회에 250만원이나 돼 그동안 엄두도 못 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할아버지에게 나오는 정부 보조금은 약 60만원이 전부. 지난해까지만 해도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암 발병 후에는 여관 월세도 몇 달째 밀린 상황이다.

"나이도 많은데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지 않아요. 다만 제가 어려운데도 끝까지 남아줬던 친구, 친척들에게 금전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게 살다가 조용히 가고 싶어요."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