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뚜막 아궁이에 6억…국세청 고액 체납자 2,226명 및 은닉 사례 공개

와인 저장고선 거북선 금 장식…개인 276억·법인 49억 1위

아궁이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고액 체납자의 숨겨진 돈가방. 대구국세청 제공
아궁이 잿더미 속에서 발견된 고액 체납자의 숨겨진 돈가방. 대구국세청 제공

'아궁이에 숨기고 골프장에 숨기고… .'

지난 9월 경북지역의 한 전원주택에 대구국세청 조사관 5명이 들이닥쳤다. 양도소득세 9억여원을 체납한 고철업자 A씨의 숨겨진 재산을 찾기 위해서였다. A씨는 부동산 경매로 배당받은 수억원의 자금을 세탁해 현금으로 숨겨놓은 상태였다. 조사관들은 대구국세청 재산은닉추적팀 소속으로 집 주변에 며칠간 숨죽이며 잠복하고 있었다. 수색에 나선 조사관들은 A씨 부인과 자녀 명의로 된 전원주택 곳곳을 샅샅이 살피던 중 재래식 가마솥이 놓인 부뚜막 아래 아궁이 안에서 검은색 물체를 발견했다. 잿더미 속에서 끄집어낸 검은 가죽가방에서 5만원권 등 한화 5억원, 100달러짜리 등 외화 1억원어치 지폐뭉치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체납된 세금 9억원 중 6억원을 확보한 순간이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재산을 숨겨둔 사업자도 덜미가 잡혔다. 부가가치세 43억원을 체납하고 그린피를 현금으로 받아 체납 처분을 회피하던 전북의 한 골프장 업주 B씨. 그러나 골프장 이용객이 몰리는 주말이 지난 뒤 월요일 금고에 현금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한 국세청의 기습적인 점검에 2억원을 압류당하고 말았다.

소득세 등 수백억원을 체납한 채 서울 성북동 대저택에서 호화생활을 즐기던 중개업체 대표도 국세청에 덜미를 잡혔다. 이 업체 대표는 미국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회사에서 빼돌린 돈으로 주택을 구입하기도 했다. 시가 80억원에 달하는 이 저택에서는 와인 저장고에 놓인 고급 와인 1천200여 병, 명품 가방 30개, 그림 2점, 골프채 2세트, 거북선 모양으로 된 금 장식 등이 발견돼 압류'봉인조치됐다.

고미술품 감정'판매업자인 C씨는 양도소득세를 줄여 신고하는 수법으로 93억원이 넘는 세금을 내지 않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C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업체를 폐업하고 미술품들을 숨겨놓은 채 차명으로 사업을 계속 했다. 또 타인 명의로 고급 오피스텔을 빌려 호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세청 조사관들의 끈질긴 미행과 탐문 끝에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한 오피스텔에 마련해 둔 미술품 은닉 장소가 들통났다. 마치 영화 같은 고액 체납자들의 꼼수들이 공개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국세청은 25일 이들 고액'상습 체납자들의 명단과 은닉 사례를 국세청 홈페이지(www.nts.go.kr)를 통해 자세히 공개했다. 공개된 인원은 2천226명으로 5억원 이상의 세금을 1년 이상 안 낸 사람들이다. 이들이 내지 않은 세금은 3조7천800억원으로, 1인당 평균 17억원을 체납했다.

개인 체납자 중에는 방위산업체인 블루니어 전 대표 박기성(54) 씨가 법인세 등 276억원을 체납해 가장 많았다. 법인으로는 씨앤에이취케미칼(대표 박수목)이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490억원을 체납해 1위를 기록했다.

대구국세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명단 공개자 등 고액'상습 체납자에 대해 재산 은닉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수색 등 현장활동을 강화해 은닉 재산을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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