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초반 창건된 성주 법수사지(法水寺址)에서 고려시대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심사역(사찰의 중심이 되는 구역)의 건물 배치가 확인됐다.
합천 해인사를 능가하는 사찰이었다고 전해지는 대사찰인 법수사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성주군과 문화재청, (재)대한문화재연구원은 지난 6월부터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214번지 부근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고려시대에 축조돼 조선시대까지 유지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터 6개와 다른 시설물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26일 밝혔다.
조사가 이뤄진 곳은 보물 제1656호로 지정된 법수사지 삼층석탑 주변(5천691㎡)으로, 1호 건물지를 중심에 두고 양쪽에 금당(金堂'부처를 모신 건물)지로 짐작되는 건물지가 드러났다. 건물지는 대부분 고려 시대에 축조돼 조선 시대까지 유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1호 건물지에는 동서 방향으로 계단과 보도 시설이 있는 등 고려 후기의 가람 배치를 보여줬다.
또 금당지로 추정되는 2호와 3호 건물지는 바닥에 벽돌을 깔고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 형태의 대규모 불단을 갖췄던 것도 나타났다. 조사단은 가구를 짜듯이 구성한 가구식기단(架構式基壇)과 뛰어난 석재 가공기술로 미뤄 이들 건물의 품격이 매우 높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자기, 기와, 청동불상 등 유물 3천여 점이 출토됐다. 특히 '법수사금당'(法水寺金堂)이라고 새겨진 평기와와 '법수사십왕당'(法水寺十王堂)이라는 글자가 조각된 청동합 등 사찰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는 유물이 나왔다.
법수사는 802년(신라 애장왕 3) 창건 당시 통일신라시대 때에는 금당사(金塘寺)로 불렸으나, 고려시대에 중건하면서 법수사로 사찰 명칭이 바뀌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문화층이 발견되면서 위용을 드러냈다.
1677년 성주에서 간행된 책인 '경산지'(京山志)에는 법수사가 금당 9개, 종각 8개 등이 있는 천 칸 규모의 사찰이라고 기록돼 있다. 성주군 박재관 문화해설사는 "이번 발굴조사는 법수사지의 극히 일부에서만 진행됐다"면서 "추가 조사를 진행하면 위용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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