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권영진 대구시장의 유럽 투자 유치 출장길에 동행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이튿날 아침이었다. 개선문이 훤히 보이는 넓은 도로에서 우리가 탄 전세버스와 소형 승용차 사이에 접촉사고가 났다. 그 현장에서 뜻밖의 재미있는 광경과 마주쳤다. 길가에 나란히 선 전기자동차 충전시설과 충전 중인 서너 대의 소형 차량이었다. 이날 아침 우리 일행은 전기차 관련 투자 논의를 위해 르노자동차와 3D프로그래밍 전문 기업인 다쏘시스템을 찾아가던 길이었는데, 생각도 못한 곳에서 전기차 충전 현장을 제대로 만난 것이다. 이만큼 생생한 소재가 있나 싶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때 마침 젊은 외국인 남녀가 전기차를 타고 와 내렸고, 쑥스러워하며 이방인들의 카메라 셔터 세례를 온몸으로 받았다.
이 전기차는 '오토리브'(Autolib: 자동차를 뜻하는 auto와 자유를 뜻하는 liberty를 합친 말)라는 파리의 소형 카 셰어링 업체가 2011년부터 선보인 서비스라고 한다. 파리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자전거 대여 시스템을 기본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1천800대의 전기차가 운행 중이라고 한다.
오토리브는 파리 시내 곳곳에서 대여와 반납이 가능한 주차장이 있고, 시간당 1만원 정도의 이용료만 내면 충전과 공영 주차장 이용이 무료다. 사전 예약만 하면 파리 시민뿐만 아니라 면허증을 소지한 여행자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인기라는 것이다.
그날 낮 우리 일행은 르노 본사를 방문했다. 그곳에선 2인승 미니 전기차('트위지')부터 세단형 전기차까지 4종의 전기차를 둘러볼 수 있었다. 르노에 따르면 이 중 세단형 전기차는 이미 싱가포르, 네덜란드, 칠레 등에서 택시로 운행하고 있다고 했다. 트위지 경우는 일본 요코하마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카 셰어링 서비스에 이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르노 관계자는 "전기차(EV) 시대는 이미 열렸고, 한국의 차 부품업체들도 이에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권 시장은 전기차를 대구 미래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 부품 업체가 많고, ICT 기술 및 인재가 풍부하다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미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테슬라는 내년에 한 번 충전으로 400여㎞를 주행하는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고,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에서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 선점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상용차 실패 이후 '네 발 달린 것'은 금물이라던 삼성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올인한 상황이다. 전기차 시대는 그야말로 어느 순간 우리 앞에 열릴 게 분명하다. 스마트폰이 어느 날 갑자기 구형 휴대전화 시장에 종말을 고했듯이 말이다.
전기차 시대를 기다리는 대구는 걱정이 더 앞선다.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가 핵심 기술인데, 기존 내연기관 차에 비해 자동차 부품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이렇게 된다면 지역 주력산업인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부품업계에 타격을 입힐 우려가 매우 크다. 업계에선 전기차 10년 후에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전후방 효과가 큰 자동차부품업의 특성상 기계, 금속 등 지역 산업 전반에 파급 효과를 미칠 게 분명하다.
대구시는 쿠팡의 택배차량을 전기차로 제작해 대구에서 운행하기로 최근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전기차 택시 도입 계획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구의 전기차 사업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제주처럼 '전기차 운행 도시'가 아니라, '전기차 산업 도시'로 가꿔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르기 보다는, 대구의 미래 먹을거리로 가꿔가는 긴 안목의 정책적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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