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소리하는 것도 죄란 말이
'도리화가'는 조선 고종 시대에 활동했던 판소리 대가 신재효가 그의 제자이자 최초의 여류 소리꾼 진채선의 아름다움을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핀 봄 경치에 빗대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단가의 제목이다. "스물네 번 바람 불어 만화방창(萬化方暢) 봄이 되니, 구경가세 구경가세 도리화 구경가세"로 시작되는 노랫말이다.
때는 1867년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소리꾼들을 위해 열었던 경연인 낙성연에서 조선 최초로 여성의 소리가 울려 퍼진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그 위에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포개진다. '왕의 남자'(2005)가 실록에 기록된 단 한 줄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연산군 시대의 광대에 관하여 풍부한 허구의 이야기를 쌓아올렸듯이, 그리고 '광해: 왕이 된 남자'(2012)가 왕이 병마로 인해 업무에서 물러난 며칠을 토대로 이야기를 창조했듯이, '도리화가'는 단편적으로 확인된 몇 가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기초로 하여 풍부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근대사회로 향하는 출입문에 선 조선 말의 시대정신과 전통사회의 한계라는 외부적 상황에서 캐릭터가 펼쳐갈 성장담, 단단한 편견을 깨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승리담에 대한 기대감으로 흠뻑 달아오른다. 성공한 한국 사극영화들이 구축한 장르적 요소들, 즉 역사적 사실 위로 펼쳐지는 허구의 드라마, 위기의 시대를 이겨내는 캐릭터의 영웅적 면모, 그리고 그를 둘러싼 민초들의 생생한 실상 등이 이 영화에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아이돌에서 연기자로 우뚝 선 배수지의 싱그러움과 노련한 류승룡의 카리스마가 어우러질 연기 앙상블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주요 요소다.
조선 후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대표적 이론가이자 당대 최고의 판소리 대가 신재효(류승룡)는 남자만이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금기와 편견을 깨고 여류 소리꾼 진채선(배수지)을 목숨을 걸고 키워낸다. 1867년 흥선대원군(김남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중건하여 이를 축하하기 위해 전국의 소리꾼들을 위한 대회 낙성연을 개최한다. 흥선대원군과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 최초의 여류 소리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는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여는 사건이었다.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타고난 재능으로 17살에 신재효에게 발탁되어 판소리를 배운 진채선의 소리는 당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판소리의 관념을 뒤집는 것이었다.
영화는 풍부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연인의 감정이 싹트는 것으로 설정한다. 춘향이의 애끊는 심정을 알지 못하는 소녀가 산처럼 거대하고 위대한 스승에게 연정을 품고서 사랑의 감정을 체험하며, 끝내 득음하게 된다는 서사 전개는 손쉬운 해결책일 뿐만 아니라 도저히 설득력이 생겨나지 않는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예쁘고 재능 있는 낮은 계급의 여인을 왕족이나 스승이 탐하는 것은 당연시되는 일이겠지만, 금기에 도전하는 최초의 인물이 관행에 쉽게 주저앉는 모습에서 캐릭터에 대한 기대치는 서서히 무너진다.
또한 소리꾼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는 서사적 클라이맥스까지 가기 위한 여정에서 겪어야 하는 온갖 역경의 드라마는 지지부진하며, 소리 선생과 문하생들의 감초 연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여배우의 싱그러운 미모를 담아내는 것에 공을 들이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이 풍부하게 살아나지 않을 때 그 미모는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22년 전 판소리 소재 영화인 '서편제'(1993)보다 후퇴한 작품이다. 여성은 나서지 못하는 시대적 한계에서 여성도 사람이며 예술가임을 선언한 한 위대한 선각자 여성을 그리는 영화임에도, 볼거리의 대상 이상이 되지 못한 점이 못내 안타깝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