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상자' 텔레비전. 집에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찾는 리모컨. 무엇을 보기 위해 트는 것이 아니라, 우선 틀어 놓으면 무엇이든 보게 된다. 침묵과 고요, 그리고 정적은 세상과의 단절로 여겨지기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차분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소음 청정 지역은 더더욱 찾기가 힘들어졌다. 상점이 밀집한 시내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모든 가게가 일제히 손님을 끌기 위해 경쟁적으로 스피커 볼륨을 키우지만, 결국 그 어느 집도 이목을 끌지 못하고 그저 시끄러울 뿐이다. 거리를 소리로 채우는 이유는 단 하나, 옆집이 틀기 때문이 아닐까? 혹시라도 소리 경쟁에서 뒤질세라 서로서로 의미 없이 목소리만 키우는 것은 아닐까? 발을 딛는 땅에는 수많은 규정과 규제가 존재하지만, 귀를 침범하는 소리에는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정지선도 없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가득 채운 소리가 침체된 경기 속에서 손님들의 발길을 잡기 위해 상인들이 지를 수 있는 마지막 절규라면 적어도 애처로운 심정으로 이해는 된다. 하지만 한가한 오후의 강변은 어떠한가? 아니면 모처럼 떠난 산행 길은? 심지어 공공 도서관은? 여기저기서 휴대용 고성능 하이파이가 증폭시킨 스마트폰의 음악 소리가 귀를 찌른다.
자극이 주어지면 우리의 몸은 그것에 '반응'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반응을 한다는 것은 크든 작든 신체적으로 긴장이 발생한다는 것이고, 신체적 긴장은 일정한 시간 동안 풀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간에 오작동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체적 긴장은 단순한 육체적 피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신작용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소리의 형태로 주어지는 지속적인 자극이 정상적인 상태로 인지되기 시작하면 일종의 심리적 왜곡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경우 고요의 상태가 오히려 긴장을 유발시킨다. 마치 흡연자가 니코틴을 흡수해야 정서적으로 평정을 유지하듯, 자극 없는 정적의 상태가 오히려 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음이 필요하다.
소음중독은 이 시대가 고민해야 할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들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경쟁과 불안이라는 자극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에게 소음중독은 '나'와 '나'의 대면을 통한 내면적 성찰의 기회조차 앗아가 버린다. 인터넷이라는 그물망으로 심지어 '관계중독'이 가세된 이 시대, 실체 없는 관계성 속에서 껍질로 포장된 '내'가 아니라 고독 속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나'의 내면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고독은 타인에게 외면당해 홀로 남은 외톨이에게 찾아오는 불편한 손님이 아니다.
고독은 마치 교향악단의 웅장한 음악 소리가 연주 홀을 가득 메우다 갑자기 딱 멈추게 되면 귀와 머리가 순간적으로 맑아지는 정화작용 같다. 이 시대 진정 필요한 것은 고독을 통한 정신적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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