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돈의 소리와 울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자리

1951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1951년 서울 출생. 경기중고·서울대 법대. 중앙대 법대교수·학장.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유훈 '통합과 화합' 정치권에 큰 울림

IMF 사태로 前 대통령 평가서 하위권

대통령 직선제 개헌·금융실명제 실시

역사에 남을 업적 깎아 내려서는 안돼

지난 일요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보통이 아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이 '통합과 화합'임이 알려져 당파와 계파로 나누어져서 대립과 갈등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리 정치권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김 전 대통령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최근 몇 년간 이루어진 전직 대통령 평가에 있어서 김 전 대통령은 항상 하위권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은 의미가 깊다.

권위주의 정부의 장기 독재에 종지부를 찍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낮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역시 임기 말에 있었던 외환위기 때문이다. 1993년에 화려하게 등장했던 '문민 대통령'은 임기 말에 발생한 치욕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쓸쓸하게 퇴임해야 했으니, 그 같은 평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 전 대통령의 다른 업적마저 평가절하되는 현상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 하겠다.

김 전 대통령이 유독 퇴임 후에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념과 지역으로 양극화되다 보니 영남과 보수는 이승만과 박정희, 호남과 진보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각각 자신들이 좋아하고 지지하는 대통령으로 뽑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김 전 대통령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아졌던 것이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진보 세력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3당 합당을 통해서 집권함으로써 친일과 부패로 연결되어 온 기득권 세력을 청산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해서 개혁 대상인 구(舊)체제를 공고화시켰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영호남 대립 구도를 고착시켰다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은 편향되고 과장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1990년 3당 합당이 가져온 한국 정치의 지형 변화에 대해선 앞으로도 많은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세계화 추세에 치밀한 준비도 없이 나서다가 1997년에 흔히 'IMF 사태'라고 불리는 경제위기를 초래해서 국가적 재앙을 불러왔다는 비판은 김 전 대통령에게는 가장 뼈아픈 것이다. 외환위기로 인해 우리 국민들이 받은 상처와 그 극복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 양극화 현상에 대해선 김 전 대통령으로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경제 정책에 대해선 몇몇 참모와 각료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했고 이들이 대통령에게 정직한 보고를 하지 않아서 상황이 그런 지경으로 흘러간 것인데, 김 전 대통령 자신으로서도 후회스럽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음이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보수 세력이 김 전 대통령을 저평가해 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 시작된 새로운 보수운동인 '뉴라이트'는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명예 회복을 도모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극단적인 보수 논객은 김 전 대통령이 '진보 좌파 시대'의 문을 열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 투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룩하고 군의 정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서 차후의 정권 교체를 가능케 했으며,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등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긴 김 전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김 전 대통령을 이렇게 깎아내리는 집단은 '보수'라기보다는 '극우'라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은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지 않았으며,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갖추었던 지도자였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8년 세월을 보냈고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에서 박근혜 대통령까지 정권이 네 번이나 바뀌었지만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부적절한 언동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음에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으며, 전직 대통령이란 직위를 남용해서 외유를 즐기거나 하는 경우도 없었으니 매우 소탈한 은퇴 생활을 한 셈이다. 대통령의 불통과 잦은 외유에 대해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 시대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자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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