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태맹의 시와함께] 행성관측

# 행성관측

-천서봉(1971~ )

불행이 따라오지 못할 거라 했다.

지나친 속도로 바람이 지나갔고 야윈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겨울, 겨울,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일찍 생을 마친 너를 생각했다.

대개 너는 아름다웠고 밤은 자리끼처럼 쓸쓸했다.

실비식당에서 저녁을 비우다 말고 나는

기다릴 것 없는 따스한 불행들을 다시 한번 기다렸다.

하모니카 소리 삼키며 저기 하심(河心)을 건너가는 열차.

왜 입맛을 잃고 네 행불의 궤도를 떠도는지.

콩나물처럼 긴 꼬리의 형용사는 버려야겠어.

말하던 네 입술은 영영 검은 여백 속으로 졌다.

그래도 살자, 그래도 살자.

국밥 그릇 속엔 늘 같은 종류의 내재율이 흐르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건 여전히 사람이지만

나는 더 이상 사람을 믿지 않는다.

(전문. 『서봉씨의 가방』. 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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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식당에서 홀로 저녁밥을 먹으며, 자신의 아픔을 '따스한 불행'이라고 말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행을 지나쳐 왔을까? '콩나물처럼 긴 꼬리의 형용사'를 달고 행방을 알 수 없는 궤도를 떠돌다 '지나치게 일찍 생을 마친' 혜성처럼 살면 '불행이 따라오지 못할'까?

우리는 그 자유로운 혜성을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 밤은 머리맡에 놓인 자리끼 물그릇처럼 쓸쓸하다. 그러나 그래도 살아야 한다. 사람-사랑이라는 중력으로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하지만 더 이상 사람을 믿지는 말기. 그 거리는 우리가 서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쓸쓸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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