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죽음 공존하는 영역 '버닝가트'
세대 간 빈부·계급 격차도 무의미
모든 일상이 신앙·장례 의식 맞춰져
갠지스 강 지킨 진정한 인도의 주인
람~람 사떼에~, 람~람 사떼에~ 구슬프고 묘한 흥얼거림이 인도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길에 울려 퍼집니다. 네 명의 사내가 들것에 뭔가를 얹고 바쁘게 지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얼핏 보니 형형색색 꽃 단장을 한 물건입니다. 그때 호기심 어린 손님을 지켜보던 식당 주인 빈수가 설명을 보탭니다. "여자 시체네요, 람~람 사떼에~는 라마는 알고 있다는 뜻인데 시체를 운구할 때 흥얼거리는 상여가입니다."
빈수의 식당은 바라나시 버닝가트 근처에 있습니다.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에는 여러 개의 가트, 즉 신에게로 가는 돌계단이 있는데 그중 버닝가트는 시신을 태우는 곳입니다. 운구 행렬이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빈수의 식당에 앉으면 마치 사후세계로 가는 관문의 수문장이 된 것 같습니다.
버닝가트의 영역에 들어서면 모든 생명이 평등해집니다. 삶도 죽음의 일부이고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죽은 자와 죽을 자만 있을 뿐입니다. 나무 살 돈이 있으면 더 타고, 없으면 덜 타서 잠시 강물에 떠다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갠지스 강이 됩니다. 불평등이 천양지차인 산자의 세상도 버닝가트에서는 무의미합니다. 죽은 자의 금반지, 금목걸이, 금이빨을 찾아 강바닥을 긁는 최하층 사람들에게는 금붙이를 가진 부자가 오히려 더 불쌍합니다. 다 타지도 못하여 신의 근처에 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힌두사제, 뱀에 물려 죽은 자, 임산부, 아이는 화장하지 않고 강물에 버리지만 그들 역시 갠지스 강의 고기가 되고 물이 됩니다.
버닝가트는 늘 북적거립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떠나고 보내는 이들, 그리고 떠날 시간을 기다리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룹니다. 시체를 둘러메고 나르는 불가촉천민, 큰 저울로 장작을 달고 있는 장사치, 수의를 파는 옷감장수, 의식을 행하는 승려, 장작더미에 시신을 올리고 불을 붙이는 노역자, 슬픔 가득한 눈망울로 망자를 보내는 가족들, 그리고 이를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는 대기자들과 비스듬히 누운 개와 소, 관광객을 태우고 강물을 오가는 사공, 모두가 한 폭 그림에 가득합니다.
그런 버닝가트에 둥지를 틀고 있는 빈수는 바라나시의 토박이입니다. 브라만 계급 가운데 상위 두 번째 계급에 속하는 귀족가문 출신입니다. 부모님은 평소에도 인도 전통 복장인 롱지와 사리를 입는다고 합니다. 갓 결혼한 부인도 브라만 집안의 전통예법에 따라 아침부터 밤까지 불편한 사리를 입어야 한다고 불만이랍니다. 빈수는 신세대답게 청바지에 유럽축구단의 유니폼 티셔츠를 입고 다니지만 진정한 인도의 브라만입니다. 모든 일상이 신앙과 맞추어져 있습니다. 해를 맞는 새벽녘에 일어나 강물에 목욕하고 기도를 합니다. 하루 일과는 집에서 키우는 소의 신선한 우유를 먹는 데서 시작합니다. 해질 무렵에는 물의 신, 불의 신에게 드리는 제사의식을 주관합니다. 화려한 제복을 입고 의식을 주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식당 주인 빈수가 아니라 인도 주인의 진면목이 보입니다.
빈수는 아침 늦게 식당 문을 열고 저녁 일찍 영업을 마칩니다.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그의 생활 때문입니다. 매일 행해지는 기도의식에 참여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이라고 합니다. 의식이 끝난 아홉 시 무렵에 늦은 저녁을 먹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먹거나 함께 시간을 가지지 못합니다. 브라만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합니다. 상업이나 기타 직업에 종사하는 바이샤, 크샤트리아, 수드라에 속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느슨할 수 있지만 브라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합니다. 인도 사람들의 평생 소원인 갠지스 강의 장례와 믿음을 누군가가 지켜야 한다면 자신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진정한 인도의 주인입니다.
빈수는 헤어짐의 순간에도 그 흔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찰나(刹那)인데 어찌 헤어짐이 있고, '다시'가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만남은 이미 억겁의 인연이 만든 것, 십 년이 지나고 백 년이 지나도 신이 생명을 허락한다면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변에 있을 거라는 빈수의 긴 눈초리에 영롱한 아침이슬이 맺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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