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낙하산의 계절

2000년대 초,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개관하면서 직원을 채용할 일이 많이 생겼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에 무대 감독직을 맡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1999년 공연법 시행령이 바뀌면서 객석이 1천 석을 넘는 공연장의 기계, 조명, 음향 감독직은 모두 1급 자격증 소지자여야 하는데 대구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괜찮은 자리가 날 때마다 지역 기여도가 없는 외지인이 쓸어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야기했지만, 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오랫동안 지역의 음지에서 열심히 활동했지만, 정작 그럴듯한 자리가 나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이 '지역에서 봉사하고 싶다'며 내려와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에 앉은 이들 가운데 임기 중 특별한 업적을 남겼다거나 임기를 마친 뒤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지역 인사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 것만 고집하다가 '우물 안 개구리'가 돼 발전을 늦잡친다. 자칫 지역 이기주의, 국수주의에 빠지고, 외부로부터는 '폐쇄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또,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한 현실에서 지역 인사는 아무래도 행동반경이 좁아 여러 측면에서 효율성이 모자란다. 그럼에도, 이를 고집하는 것은 지역에서만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좋은 자리에서 자신의 역량을 활짝 펼칠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정치의 계절이다. 많은 이들이 내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새누리당 공천을 목표로 뛰는 중이다.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출마를 결심한 이도 있고, 청와대나 장'차관 등의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하다 뒤늦게 지역에 봉사하겠다며 나선 이도 있다. 후자는 어떤 경쟁자보다 강력하다. 외적인 스펙 탓인지, 어느 분의 복심(腹心)이 깔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강림할 것이라는 말이 떠도는 순간, 판도는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이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 해서 낙하산이라 부른다.

하루에 구만리를 날아다니는 붕(鵬)의 뜻을 참새가 알 리 없다. 붕도 참새의 뜻을 한 번도 헤아리지 않고 날아다녔을 것이다. 그렇지만, 붕이 참새의 둥지에 깃들려면 참새가 돼야 한다. 그리고 그 둥지는 이미 지어놓은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물어 온 나뭇가지로 열심히 지은 둥지여야 한다. 그래야 뭔가 형평성이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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