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이나 차량 등 군수품에 위장용 얼룩무늬를 입힌다는 아이디어는 20세기 초 미술계의 혁명을 불러온 큐비즘(입체파)에서 차용한 것이다. 큐비즘이란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에 의해 창시된 유파(流派)로, 간단히 말해 여러 시점에서 관찰하여 분해, 재구성해 여러 각도에서 본 모양을 한 화면에 표현하는 기법이다. 즉 사물의 모습을 왜곡함으로써 실제 사물을 더 역동적이고 입체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군수품 위장에 처음 활용한 사람은 프랑스 화가 '뤼시엥 빅토르 기랑 드 세볼라'였다. 그는 1차 대전 때인 1915년 프랑스군 통신대에 종군하고 있었는데, 훤히 노출된 프랑스 부대가 독일군의 집중포화를 받는 장면을 보고 질감과 색을 적절히 응용한다면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군대나 기계의 모습을 왜곡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착상을 하게 됐다. 실험 결과 생각대로였다. 한 부대원들을 다양한 색으로 칠해 멀리서 지켜보니 과연 병사들의 모습이 잘 식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프랑스군은 세볼라와 다수의 입체파 화가들로 구성한 위장 전담반을 만들어 군수품 위장에 착수했다. 대상은 주로 차량, 포좌(砲座)와 탄착점 관측을 위한 말뚝 등이었고, 무슨 이유였는지 군복은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날 보편화한 얼룩무늬 전투복을 처음으로 부대 단위로 도입한 것은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의 무장 친위대였다.
세볼라가 차용한 입체파의 사물 왜곡 기법은 곧바로 영국군도 도입하게 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해군 제독이자 풍경 화가였던 노먼 윌킨슨이 디자인한 '미채'(迷彩, dazzle painting)라는 함정 위장술이다. 군함에 얼룩말처럼 흑백의 직선 줄무늬를 어지럽게 그려넣어 적이 대포나 어뢰를 정확히 조준하기 힘들게 하는 기법으로, 눈으로 거리를 측량해 포나 어뢰를 쏘았던 당시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가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군수품에 디자인을 접목하기로 했다. 대상은 야전삽, 방한 장갑, 총기 멜빵끈 등으로, 현재 보급된 접이식 야전삽은 길이가 짧고 불편해 땅을 팔 때 충격이 그대로 팔에 전해지고, 방한 장갑도 보온성이 떨어진다는 '소원 수리'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디자이너들이 군부대에서 심도있게 관찰해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분석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리다. 디자이너의 손길이 야전삽, 방한 장갑에 머물지 않고 군수품 전반으로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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