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醬), 전통을 발효하다] 선조의 손맛 '돈'이 된다

장 담그기의 전통, 가정을 넘어 식품기업으로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와 함께해온 장. 그 안에는 발효과학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서도 깊이 배어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와 함께해온 장. 그 안에는 발효과학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서도 깊이 배어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이리 좋은 걸, 어찌 우리가 소홀히 한단 말입니까?"

된장'간장'고추장 등 전통 장은 우리 조상들의 얼이 담긴 발효과학 음식이다. 24절기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도록, 곰팡이'미생물'햇살'바람'공기 등을 이용한 자연식품이 바로 대한민국 전통 장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장은 서구화된 현대인의 입맛 때문에 푸대접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만의 자랑이다.

최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위치한 드렉셀대학교 호텔조리예술식품과학과 학생들은 한국 전통 장류의 맛과 우수성을 배우기 위해, 경기도 이천의 샘표 간장공장을 찾았다. 학생들은 종균 배양 시설을 포함한 첨단 시설 장비 등 한국의 전통 장을 생산하는 현장을 둘러봤으며, 1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장을 직접 맛보며 한국 전통 장의 맛과 매력에 푹 빠졌다. 이번 주 주말판은 한국의 대표 발효음식인 장 이야기를 해본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한반도의 음식은 장으로 시작해 장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화된 식단이 판치는 현대에도 모든 가정의 반찬과 국에는 대부분 우리 전통 장으로 맛을 낸 요리가 대부분이다. 가정이나 식품기업에서도 현대화된 주방기구와 가공시설을 이용하긴 하지만 아직도 장을 만드는 방법은 전통적인 방식이 더 많다.

◆산사에도 전통 장 향기가 '솔~솔~'

3년 전 겨울, 충북 단양 구인사(대한불교 천태종 본사)란 절을 찾았다가 장을 담근 수많은 장독대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산사의 절 풍경과 장독대가 어울려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3년이 지나 2일 구인사 총무부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장독대 담당자를 찾았다. 구인사 장독대 등 전반적인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총무부 연담 스님이 이 장독대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줬다.

구인사에는 150여 개의 장을 담근 장독대와 된장을 담그는 지하 저장고가 있다. 스님들과 신도들의 울력(힘을 합침)으로 담그는 장은 연례행사로 정착돼 있다. 1년 내내 구인사 스님들과 신도, 관광객까지 먹을 간장, 된장, 고추장, 막장 등을 직접 담근다. 웰빙 콩도 구인사 인근에서 직접 재배한다. 11, 12월에는 직접 키운 콩을 타작하고, 12월에는 메주를 만들고, 1, 2월에는 메주를 말린다. 초봄인 3월에 메주를 띄워 간장, 된장 등을 만든다.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구인사 장은 웰빙 발효 장으로 전국의 많은 불자에게 알려져 있다. 연담 스님은 "우리 절의 장에는 몸에 좋지 않은 인공 첨가물이 아예 하나도 들어가지 않으니, 아무래도 자연 웰빙 음식을 만드는 주재료인 셈"이라며 "많은 불자나 관광객들이 우리 절에도 점심 또는 저녁 공양하는 것을 약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위치한 '영평사'도 '산사의 참맛'이라는 전통 사찰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평사의 전통 장은 방부제나 발효억제제, 조미료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국내산 1등급 원료만을 사용하여 맛을 내고 있는 완전 재래식 장이다. 특히 영평사의 장맛은 산사의 자연 속 물과 바람, 햇볕으로 10년 이상 발효 숙성시킨 죽염 장류로 소문나 있다. 된장은 물론이고 고추장, 간장, 청국장, 장아찌, 죽염 등 전통식품으로 건강한 밥상을 식품으로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영평사의 장은 승가의 전통 제조법으로 맥을 잇는 9회 죽염과 100% 우리 콩으로 만들어졌다.

전통 장을 만들어내는 독은 오래된 독일수록 미세한 공기구멍이 뚫려 있어 외부 공기와 소통하여 한층 깊은 장맛을 내도록 돕는데, 영평사의 장맛의 비결이 바로 이 숨 쉬는 전통 항아리에 있다. 50여 년 이상 된 장독이 500여 개 있어 맛있는 된장, 고추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북, 전통 장맛을 내는 식품기업

대한민국 전통 장 담그기에 역사의 고장 경북이 빠질 수 없다. 경북의 종갓집에는 각각 장 담그는 노하우들이 숨어 있는데, 이를 기업화한 곳도 적지 않다. 전통 장은 이제 가정을 벗어나 돈을 만들어주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농업회사 법인 '가득'은 경북 청도군 각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메주'된장'간장'고추장'청국장을 생산하는 회사다. 제품 이름은 '진배기'인데 진짜배기 전통 장맛을 담았다는 뜻이다. 진배기의 장맛을 책임지고 있는 도성구 씨는 1992년부터 된장독에 빠져서, 23년째 전통식품 장류를 연구하는 전통장 장인이 됐다. 도 씨는 "실제 된장을 접하고 보니, 수많은 구전이 전해져 내려오고 만드는 방법도 다 달랐다"며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장 담는 법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때부터 된장독에 빠졌다"고 말했다.

유익한 발효균을 이용하여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발효한 천연 발효식품 '진배기' 장류의 재료는 국산 콩, 순수 메주곰팡이, 소금물이 전부다. 그 속에서 제조기술(메주발효)로서 맛의 예술을 탄생시킨 것이다.

경산에는 옛 선조의 장 담그는 방법을 그대로 장독에서 숙성시켜 전통의 장맛을 재현하고 있는 자인농협 전통 메주'장류 가공공장이 있다. 순수 국산 콩으로 메주를 생산, 농가소득 증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1㎏당 수입 콩이 600~700원인데 비해 국산 콩은 3천원 이상으로, 일반 장류공장보다 5배 이상의 원가 부담을 안아야 함에도, 정부지원금을 받아 농민을 위한 공장으로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다. 이대희 자인농협 농협장은 "농민들과 계약 재배한 우리 콩만을 사용하는데다 식품 첨가물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등 철저한 위생관리로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구미 백야농원도 경북 농업 CEO사업 우수농가로 선정된 곳이다. 이곳 농원은 낙동강을 옆에 끼고 직접 재배한 메주콩으로 전통방식에 의한 발효숙성 장류를 생산하고 있다.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 땀과 정성으로 숨 쉬는 전통옹기에서 발효숙성하여 장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장류 체험객과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특히 보리를 이용한 전통 보리 막장은 현대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백야농원은 간 기능에 도움을 주는 약콩 청국장, 오래 숙성된 재래된장은 고향 어머님의 손맛을 느끼게 하는 명품장류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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