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바이오메트릭스

SF 거장 필립 킨드레드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이나 '엘리시움' 등 할리우드 SF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바이오메트릭스다. 길거리나 지하철, 건물 내 어디서든 홍채 등을 인식해 신원을 알아채고 뇌 정보 등을 이식하는 생체 기술이 자주 등장한다. 딕의 공상과학소설은 이미 30년도 훨씬 전에 이런 기술의 출현을 예고한 셈이다.

개인의 인체 정보를 이용한 생체인식 기술이 날로 변신하고 있다. 특히 높은 보안을 요구하는 금융거래는 바이오메트릭스의 시험대다. 핀테크의 발전으로 지문'서명을 대체할 인증 수단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얼굴, 목소리, 홍채, 정맥, 심전도 등 갖가지 식별 수단이 현실화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문 대신 손가락 정맥 인식을 통해 근태를 관리하고,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앞두고 은행들도 카드 없이 예금 입출금이 가능한 지정맥 인식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지정맥 인식은 손가락에 있는 정맥을 통해 개인을 식별하는 시스템이다. 적외선을 비추면 혈관 내 헤모글로빈에 흡수돼 혈관 패턴이 나타나는데 이를 비교'인증하는 방식이다.

혈관 내부를 인증하기 때문에 위조'복제가 불가능한데 지정맥 패턴이 비슷할 확률은 1억 명 중 한 명꼴이다. 5천 명 중에 한 명꼴인 지문과는 비교 불가다. 손가락만 대면 간단히 인증되는 비접촉 방식이라 거부감도 적다. 일본 은행의 지정맥 인식기 보급률은 현재 80%에 이른다.

최근 발생한 미국 샌버나디노시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가 한국 등 38개국과 맺은 비자면제 프로그램을 보완해 지문'얼굴 등 정보를 담은 '생체칩 전자여권' 의무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테러 방지와 효율적인 출입국 관리를 법제화 취지로 내세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생체 여권의 다른 이름은 '감시'라고 지적한다. 심지어 생체 여권은 '감시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라고 일컫는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흩어져 있는 개인 생체 정보를 연결해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생체 정보는 간편한 개인 식별 수단이지만 인권'프라이버시 침해의 우려가 크고 해킹 등 정보 유출의 심각성도 만만찮다. 테러 방지를 위해 EU와 유럽의회가 항공 승객 정보 공유에 합의하고, 도널드 트럼프처럼 "무슬림 데이터베이스를 작성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시점에서 자칫 생체 정보가 또 다른 피해를 부르는 원인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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