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일 때문에 전화도 쓸 수 없고, 인터넷도 할 수 없는 그런 곳에 다녀왔었다.(교정 시설이나 정보기관에 잡혀간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세상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신문과 텔레비전밖에 없었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정보를 얻는 방식은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보면서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을 찾고, 댓글을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도 살펴보는 바깥에서의 방식과는 많이 차이가 났다. 특히 종편 채널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뉴스가 강용석 변호사와 도도맘, 장윤정 모녀 이야기밖에 없나 싶을 정도였다. 밖에 있으면 열어 보지 않았을 뉴스였지만 몇 안 되는 채널에서 계속 나오니 강제로 강용석 변호사와 도도맘에 관련된 뉴스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뉴스를 보면서 나름 흥미를 가지고 보았던 부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남자(여자) 사람 친구'라는 말이었다
'남자(여자) 사람 친구'란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전혀 없는 이성 친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새로 생겨난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남자'라는 말에 이미 사람이라는 뜻이 있는데, 굳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넣었기 때문에 매우 어색한 표현이다. '남자 친구'라고 하거나 그냥 '친구'라고 해도 될 것을 왜 그렇게 잉여적 표현을 많이 넣은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를 추적해 보면 이성 간의 사랑이나 우정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이성 간의 관계를 뜻하는 말로는 '애인'이나 '남자(여자) 친구'(줄여서 남친 혹은 여친)에 최근에는 '썸남 썸녀'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중 '애인'은 대체로 공식적으로 인정된 연인이며, 결혼까지도 전제하는 관계이다. 만약 기혼자에게 애인이 있다면 남들이 부를 때나 신문의 사회면에 등장할 때는 '내연남(여)'이라는 아주 부도덕해 보이는 명칭이 된다. '남자(여자) 친구'는 애인보다는 정도가 약하지만 역시 공인된 연인이며, '친구' 이상의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혼자에게는 '남자(여자) 친구' 역시 '내연남(여)'이 된다.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썸남 썸녀'라고 하는데, 만약 기혼자들이 이런 관계에 있다면 '잠재적 내연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배우자 이외의 다른 이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내연 관계(불륜)가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사회적인 인식이 이렇다 보니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자연히 꼭꼭 숨겨야 할 때가 있다. 아니면 진짜 친구처럼 편하게 술 마시고, 같이 수다 떨고 하는 편한 사이인데, 사회의 인식 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의도적으로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넣어서 관계에 선을 긋는 표현이 바로 '남자(여자) 사람 친구'이다.(이런 점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무척이나 청교도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남는 의문은 그냥 순수한 우정이라면 이성 간에도 그냥 '친구'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 말은 대부분 동성 간에만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성 간에는 우정이 성립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친구'와 '남자 친구'의 의미가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마포에 가면 '마포갈비'집들이 있는데, 똑같은 집들이 많다 보니 어떤 집에는 '진짜 원조 마포갈비'라는 간판을 단 곳도 있다. 맛 좋은 갈비를 판다는 본질적인 것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말은 길어졌지만 진짜 원조인지 의심은 여전하다. '남자 사람 친구'라는 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쓸데없이 길지만 찜찜한 말로 계속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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