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알프스 기행]융프라우 파노라마 길

아이거·묀히·융프라우 삼두마차, 거친 호흡으로 가슴 가득 질주

쉬니케 플라테에서 시작한 산행은 줄곧 베르너 오버란트의 파노라마를 지켜보며 걷는다. 아이거와 묀히, 융프라우가 지척이다.
쉬니케 플라테에서 시작한 산행은 줄곧 베르너 오버란트의 파노라마를 지켜보며 걷는다. 아이거와 묀히, 융프라우가 지척이다.
산행 출발지인 쉬니케 플라테. 스위스인들은 1893년에 이곳까지 등산 열차를 놓아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산행 출발지인 쉬니케 플라테. 스위스인들은 1893년에 이곳까지 등산 열차를 놓아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스위스 알프스의 대표적인 전망대는 단연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3,454m)다. 1912년, 착공 16년 만에 거대한 바위산을 뚫고 우여곡절 끝에 완공되었다. 이 전망대가 서 있는 묀히(Monch'4,099m)와 융프라우(Jungfrau' 4,158m) 그리고 아이거(Eiger'3,970m)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보이는 횡단길이 있다. 쉬니케 플라테(Schynige Platte'1,967m)에서 피르스트(First'2,167m)까지 이어진 15㎞ 길이의 능선길이다. 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파울호른(Faulhorn'2,681m) 정상에는 융프라우요흐보다 훨씬 앞서 1830년에 지어진 산장이 하나 있다. 파울호른 산장인데, 그 옛날에 바위산 꼭대기에 산장을 지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코스의 빼어남을 짐작할 수 있으며 스위스 사람들의 집념도 알 수 있다. 척박한 알프스의 자연환경을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킨 스위스인의 지혜와 저력을 실감하게 된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향할 때 저 멀리 가슴 설레게 하는 눈 덮인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융프라우가 속해 있는 베르너 오버란트 산군인데, 인터라켄에서 산군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빌더스빌(Wilderswil' 584m)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톱니바퀴가 달린 붉은색 관광열차로 갈아타고 두 호수 사이에 낀 인터라켄을 내려다보며 산비탈을 끼고 1,400m 고도를 50분 달려 쉬니케 플라테에 오른다. 스위스인은 1893년에 이곳까지 철로를 놓고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도록 호텔도 건설했다. 기차역 뒤편의 알파인 정원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500여 종의 고산식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전망대 주변의 산책로만 한두 시간 둘러봐도 좋다.

주말이면 지역주민들이 기차역의 탁 트인 언덕에서 주변의 만년설산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알프호른의 멋진 화음은 알프스를 시청각으로 실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전망대 뒤편 식물정원으로 이어진 완만한 길을 따라 트레킹은 시작된다. 북동쪽으로 이어진 능선의 산허리를 돌아 오르다 보면 몇몇 언덕에서는 인터라켄의 에메랄드빛 두 호수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산허리를 돌아갈수록 인터라켄은 멀어지고 설산이 가까이 다가온다. 도중에 앞의 바위장벽에 설산이 잠깐씩 가리곤 하지만 인터라켄 주변 산들의 풍경이 좋다.

산허리를 끼고 두 시간 가까이 걸어 제기스탈(Sagistal) 계곡을 왼편 아래에 두고 제기스탈 호수를 발아래로 지켜보며 돌아 오르면 멘들레넨 산장(Manndlenen Hut'2,344m)이 나타난다. 비싼 물가의 스위스 치고는 저렴한 요금(51CHF'한화 약 5만7천원)으로 하룻밤 묵기 좋은 곳이다. 산장 위 돌계단을 지나 반 시간 오르면 전망이 트이면서 베르너 오버란트 산군의 파노라마가 한층 더 다가온다. 드넓게 펼쳐진 파노라마 가운데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의 삼두마차가 흰 눈을 쓰고 불쑥 솟은 풍경이 거친 호흡으로 한층 벌어진 가슴 가득 밀려들어 온다. 이제껏 필자는 1년에 한두 번 베르너 오버란트 산군을 찾지만 주로 알파인 등반을 위해서였다. 나무만 보다가 숲을 보는 듯한 감회에 젖을 수밖에. 이곳서 그린델발트 계곡을 오른편 발아래에 두고 동북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파울호른쪽으로 걷는다. 바람에 노출된 능선의 돌길이지만 잘 닦여 있으며 군데군데 쇠말뚝이 박혀 있어 길 찾기에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여름철에도 알프스의 2,000m 고지에는 눈보라가 칠 수 있어 방풍 보온 의류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사방으로 뻥 뚫린 능선 위를 따라 한 시간 채 걷지 않아 파울호른 아래에 이른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알프스의 일몰과 일출뿐 아니라 밤하늘의 풍경을 보려면 파울호른 정상부에 자리 잡은 산장에서 여유 있게 하룻밤 묵으면 된다.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은 만년설산의 침봉들과 둥근 달이 어울려 만드는 실루엣, 철로를 만들기 위해 뚫은 아이거 북벽의 갱도와 융프라우요흐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절정을 이룬다. 하루 정도 머물 시간이 없으면 파울호른 아래에서 산장에 오르지 않고 우측 산허리를 도는 길이 있다. 가슨보든 안부(Gassenboden saddle' 2,553m)로 이어진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곧이어 도착한 고개에서 길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흐 호수(Bachsee'2,265m)로 이어진다. 도중에 돌로 지은 대피소가 두 개 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다. 고개에서 반 시간 만에 호수에 닿는다. 호수 주변에는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오른 트레커들도 있으며 심지어 낚싯대를 드리운 이도 있다. 만년설산이 호수에 담기는 풍경이 절경이다. 이제 길은 피르스트까지 완만하게 잘 닦여 있다. 베터호른과 핀스터라르호른의 거대한 바위벽을 앞에 두고 그린델발트 계곡 위에 솟은 아이거와 융프라우를 보며 걸어 한 시간 만에 피르스트에 닿는다. 등산 열차와 곤돌라를 이용해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알프스 2,000m 고지의 파노라마 코스였다.

허긍열 알프스 전문 산악인 vall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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