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육대학 양선규 교수는 책에는 하품, 중품, 상품이 있는데, 하품은 요즈음 유행하는 지식이나 출세를 구하는 책, 중품은 지혜를 구하는 책, 상품은 윤리를 구하는 책이라 했다.
윤리가 녹아 있는 가장 중요한 책은 역사책이다. 역사책이 이런 위치를 차지한 것은 '사기' 저자 사마천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중국의 전설적인 황제부터 한무제(BC 87)까지 약 2천 년의 방대한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고 자주 인용하는 사기의 '열전'(列傳)을 통해 역사의 윤리를 제시했다.
'역사의 아버지'라 일컫는 사마천은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주 이야기나 권모술수로 출세한 재상들의 이야기도 서술했지만, 차라리 하찮게 보이는 인물들이 보인 의리를 더 중시했다. 폭력 군주에 저항하여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숙제, 모시던 군주를 처참하게 죽인 자를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자객 예양 같은 세속적으로 실패한 인물을 오히려 역사에서 앞장세웠다.
의리는 산같이 무겁고, 죽음은 기러기의 털과 같이 가볍다는 말처럼, 역사의 의리를 위하여 죽음조차 가벼이 여긴 인물을 사마천은 높이 평가했다. 사마천의 '의리' 즉 바른 윤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에 대한 의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에서 사람은 이름을 역사에 남긴다는 뜻이다. 역사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게 사마천이 본 의리였다. 백이'숙제는 평화를 위해, 예양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자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사기의 백미는 성공한 권력을 헛되게 찬미하지 않고 이처럼 의리 있는 사람을 칭송했다.
일제강점 36년 동안 우리도 백이'숙제와 예양 같은 인물이 있었다. 우당 이회영은 한양 최대의 땅 부자로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모든 땅을 다 팔고 만주로 갔다. 그 돈으로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했다. 자신은 얼어붙은 만주 벌판에서 구멍 난 양말에 신발조차 변변치 않았다. 군자금을 모으려고 중국 대륙을 헤매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66세 나이에 모진 고문 끝에 감옥에서 숨졌다.
미국 여류작가 님웨일즈의 '아리랑' 주인공인 독립투사 김산은 중국군과 함께 일제에 투쟁하다 일제 스파이로 오인 받아 중국군에 처형당했다. 김산은 자신의 집념을 님웨일즈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와 내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오로지 나 자신에 대해서만은 승리했다." 실패를 계속하면서도 역사의 의무를 놓치지 않은 이런 모습이 역사에 대한 의리다.
사마천이 우리 현대사를 쓴다면 우당 이회영과 김산 같은 역사에 의리를 다한 인물을 역사책 맨 앞장에다 놓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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