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헬 조선, 헬 코리아

백수의 왕 사자는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 뒤 살아 올라오는 놈만 키운다고 알려져 있다. 청년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자연계에서 자기 새끼를 고의로 위험에 빠트리는 동물은 없다. 이 그릇된 이야기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 수컷의 새끼를 죽이는 수사자들의 습성이 와전된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절벽 아래로 밀려 떨어진 새끼 사자의 처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밀어 떨어뜨린 이는 사회라는 이름의 수컷 사자다. 일부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도전 정신이 없으며 힘든 일을 기피한다고 타박한다. 헝그리 정신으로 정신을 재무장해야 한다고 재촉하기도 한다.

살아온 환경 자체가 다른 기성세대와 2030세대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덩달아 세대 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를 풀기 위한 사회적 노력조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타고 '헬 조선'이라는 신조어가 2015년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헬'(Hell:지옥)과 '조선'을 합친 말로'전혀 희망이 없어 지옥에 가까운 한국 사회'를 비꼬는 말이다.

유행어 헬 조선의 이면에는 끝 모를 경제난과 취업난에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 현상으로 인한 2030세대의 절망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2030세대들의 절망감은 예사롭지 않다.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를 검색하다가 이런 댓글을 봤다. "한국사회를 헬(Hell)이라고 하는 것은 지옥에 대한 실례다. 적어도 지옥에서는 죄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다."

그런데 '헬 코리아', '헬 대한민국'이 아니고 왜 하필이면 '헬 조선'일까. 이는 현 상황과 구한말의 시대상이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18, 19세기 조선은 신분사회에 따른 병폐가 극단적으로 치닫고 가뭄과 폭정, 외세 열강 패권 경쟁으로 인해 민초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던 시대였다.

역설적으로 '헬 코리아'나 '헬 대한민국'이 아니라 '헬 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는 점에서 나는 일말이나마 희망을 본다. '코리아'나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어서 감히 '헬' 따위의 수식어가 붙을 여지가 없는 것이다.

젊은이는 기성세대들의 거울이다. 또한 청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하는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세대 갈등을 풀려면 기성세대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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