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소년 인터넷 도박 심각…단순히 '용돈벌이'로 시작했다가 100만원까지 베팅

한 반 학생 중 90% "도박 경험 있다"…스포츠 경기 결과 맞혀 돈 벌자 중독

8일 PC방에서 한 청소년이 인터넷 도박에 열중하고 있다. 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음.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8일 PC방에서 한 청소년이 인터넷 도박에 열중하고 있다. 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음.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인터넷 도박 중독은 이제 성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도박에 중독된 한 청소년은 "같은 반 학생 중 90%가 도박 경험이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기범죄까지 저지르는 경우도 적잖다. 별다른 죄의식 없이 친구를 따라 하고 또 다른 친구가 다시 이를 따라 하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청소년들이 인터넷 도박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온종일 머릿속에 맴돌아"

고등학교 2학년 김모(17) 군은 3개월 전쯤 부모와 함께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대구센터를 찾았다. 수년째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터넷 도박을 끊기 위해서였다.

김 군이 인터넷 도박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평소 스포츠 경기 관람을 좋아하던 김 군은 우연히 경기 결과를 맞히는 도박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작은 단순히 '용돈 벌이'였다. 한 경기당 1천원 정도를 베팅한 김 군은 돈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 쾌감을 얻었다. 1천원에서 시작한 베팅은 어느새 100만원에까지 육박했다. 김 군은 "1만~2만원을 베팅했을 때는 운이 좋아야 4만~5만원을 땄는데 100만원 정도 베팅하니 운이 좋은 날엔 하룻밤에 400만~500만원을 쉽게 땄다"며 "그저 재미있고 신기해 돈을 잃어도 또 따면 된다는 생각에 도박에 빠져들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김 군은 어느 순간부터 점차 '폐인'이 된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새벽에 주로 스포츠 경기를 봐야 하기 때문에 낮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점점 등교하기도 힘들어지고 돈을 모을 방법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쉽게 딴 돈인 만큼 지출도 쉬웠다. 김 군은 "도박으로 딴 돈은 주로 술을 마시거나 유흥비로 썼다"며 "큰돈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 군은 스스로는 절대 도박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결국 지난 9월 도박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렸고 상담을 시작하게 됐다. 3개월간 총 6번의 상담이 진행됐지만 여전히 김 군 머릿속에는 도박이 맴돌고 있다. 그는 "초반에는 열심히 상담을 받았지만 자꾸만 도박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컴퓨터 앞에 앉게 됐고 지금은 또 상담을 미루고 도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군은 청소년 사이에 인터넷 도박은 이미 일상화됐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 도박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또래들은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같은 반 학생 중 90%는 인터넷 도박을 한다고 보면 된다"는 충격적인 말도 했다.

◆잠재적 범죄자 만들어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도박을 경험한 청소년 중 상당수는 속칭 '먹튀'(배당금을 주지 않고 사이트를 폐쇄하는 행위)의 피해자가 되거나 범죄 가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2개월 전부터 인터넷 도박을 해온 중학생 이모(15) 군은 최근 두 차례나 '먹튀'를 당해 배당금을 몽땅 잃었다. 이 군은 자신의 소유인 최신형 스마트폰을 중고 거래 사이트를 통해 40만원에 팔아 돈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도박으로 잃었다.

최근 상담센터를 찾은 임모(18) 군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불법 인터넷 도박을 하다가 최근에는 친구들에게 도박 자금을 빌려주고 고액의 이자를 받아 챙기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허정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대구센터 상담사는 "청소년의 경우 대출이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도박자금 마련이 어려워서 중고 거래 사이트를 통해 사기를 쳐서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는 등 관련 범죄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아예 처음부터 도박 사이트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박동균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의 보급뿐 아니라 최근 스포츠 스타나 개그맨 등 유명인들의 도박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것이 호기심 많은 청소년을 도박으로 유혹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며 "예방을 위해 민관 합동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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