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이게 공정 경선인가?

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 지인이 불쑥 자신을 새누리당 당원이라고 털어놨다. 이분은 정치와는 담을 쌓고 사는 직장인인데, 그 정도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가 싶어 내심 놀랐다. 입당 이유를 물어보니 "거래 관계에 있는 사람이 권해 할 수 없이 입당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 옆에 있는 분도 당원이라고 했다. 시의원과의 친분 때문에 입당 원서를 쓰고 매월 당비 1만원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에서 어느 정도 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꽤 많은 분이 새누리당 당원이다. 새누리당을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답변은 그게 아니었다. '구'시의원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친분 때문에' '사업상 필요해서' 따위의 이유를 댄다. 선거 때마다 입당 원서가 수천'수만 장씩 뿌려져 왔으니 당원 수가 엄청나게 많을 수밖에 없다. 대구에만 당원이 10만 명이나 있다고 하니 지역을 '새누리당의 정치적 터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당원 명부에만 올라 있는 명목상의 당원은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6개월 이상 당비를 꼬박꼬박 내온 책임 당원의 수다. 이들은 당내 경선에 투표 자격을 갖고 있는 '귀하신' 분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해 말 대구에 1만 명 조금 넘던 책임 당원 수가 현재는 3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는 점이다. 한 지역구의 경우 지난해 1천500명이던 책임 당원 수가 3천500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경북지역도 마찬가지로 경주, 포항, 안동 등에도 책임 당원의 수가 수천 명씩 늘어났다고 한다. 1년도 채 안 되는 시기에 책임 당원 수가 몇 배나 증가했다면 당세(黨勢)가 엄청나게 확장되고 신장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현역 의원이나 출마 예상자들이 조직을 동원해 지역 구민을 무더기로 입당시켰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 때문에 지역 공공기관, 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거의 새누리당 당원이 돼 있다. 기초'광역의원, 당직자들과 안면이 있거나 눈치가 보이는 이들은 당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니, 당세 불리기가 이렇게 쉬운 것인지 모르겠다.

일찌감치 총선을 준비해온 한 출마 예상자의 얘기는 당내 경선의 폐해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 초부터 아는 분들을 하나둘씩 입당시켰는데 그 숫자가 꽤 됐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현역 의원이 부랴부랴 기초'광역의원, 당원협의회 등을 총동원해 무차별로 당원 늘리기에 나서더니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순식간에 입당시키더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해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를 제안하며 국회의원들에게 "공천을 받고 싶으면 지역구에 내려가라"고 말했던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유력 출마 예상자들은 지역 구민들에게 자신의 비전이나 정책을 알리기보다는, 당내 경선에 대비해 당원 늘리기에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여온 것이다. 가히 사전 선거운동의 최고봉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은가.

새누리당 당헌'당규에 당원과 일반 국민에게 각 50%씩 지지 결과를 반영해 후보자를 뽑게 돼 있으니 책임 당원만 일정 부분 확보하면 공천권을 거머쥐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분위기다. 이런 '불공정 게임'으로 인해 뒤늦게 선거운동에 뛰어든 공천 희망자들은 경선을 해본들 무슨 승산이 있겠는가.

새누리당은 공천 룰을 만들기 위해 특별기구를 출범시켰다. 결선투표제, 상향식 공천 방식 등을 논의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입씨름을 해본들 일찌감치 자리 잡고 당원 늘리기에 매진했던 현역 의원을 이길 수 있는 지역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제도와 취지가 좋더라도 이를 교묘하게 활용하는 이들이 있는 한, 정치 발전이니 공정 경선이니 하는 것은 딴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다. '공천=당선'이란 공식이 성립되는 대구경북의 슬픈 자화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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