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8일 아프리카 튀니지 동남부의 작은 지방도시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20대 청년 모하마드 부아지지가 분신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 못해 무허가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 경찰이 단속하자 자기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모하마드의 죽음은 극심한 생활고와 억압 통치에 함께 신음하던 국민 가슴에 불을 질렀다. 시민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른바 재스민 혁명의 시작이었다. 재스민은 튀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다.
혁명 시작 한 달도 안돼 튀니지에서 23년간 독재를 해오던 벤 알리 정권이 무너졌다. 벤 알리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쳤다. 혁명은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곧이어 30년을 이어온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도 정권을 내놨다. 혁명의 불길은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등 아프리카 국가를 넘어 예멘,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계속되는 아랍에서의 시위 행렬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가난과 독재가 만연한 중동에서 민주화가 만개할 것이란 꿈이 커졌다.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줄 알았다. 그래서 '아랍의 봄'이란 이름이 붙었다.
5년이 흘렀다. 중동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봄을 기대했건만 아랍은 여전히 겨울이다. 재스민 혁명의 진앙지였던 튀니지에선 테러와 총기 난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혁명의 이유가 됐던 국민의 가난도 달라진 게 없다. 리비아 역시 카다피 사후 내전 상태에 들어갔다. 이집트에서는 첫 민선 대통령으로 당선한 무함마드 무르시가 군부 쿠데타로 물러나고 혼돈의 정치가 이어지고 있다.
'아랍의 봄'을 노래했던 나라치고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는 없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못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서 정치적인 불안은 더해졌다. 오히려 5년 전보다 살기 힘들어진 나라들이 더 많다. 이런 상황은 시리아와 이라크를 근거지로 생겨난 IS에겐 더없는 놀이터가 됐다. IS는 그 빈틈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IS의 횡행은 주민들에게 팍팍한 삶뿐만 아니라 지독한 공포 그 자체다.
흔히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아랍을 보노라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민주주의는 '피'보다 '경제'를 먹고 자란다. 먹고 살만해지면서 민주화를 이룬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을 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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