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쟁점법안 통과 일방적 지시
의회와 소통·협력 사라진 국정 운영
제왕처럼 행세하는 대통령에 대해선
선거 통해 유권자들이 의사 표명해야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러서 노동개혁법안 등 쟁점법안을 연내에 반드시 통과시키라고 명령조로 지시를 했다. 국무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국회가 기득권에 빠져 있다면서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는 야당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야당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야당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던 일이다.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기 위해선 대통령과 의회가 소통하고 협력해야 함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인데, 그런 상식이 아예 사라진 것 같아 씁쓸하다.
국회의원 생활을 오래하고 한때는 야당 대표를 지낸 박 대통령이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부하 다루듯이 하고 야당을 적대시하는 대통령이 될 줄로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것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인데, 국회선진화법을 입안해서 통과시킨 장본인이 박 대통령임을 생각하면 그 같은 '변신'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민심을 존중하는 것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이고, 일단 대통령이 되고 나면 임기 동안은 '제왕'(帝王)이 되고 만다는 '제왕적 대통령' 이론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대통령제를 오래 운영해 온 미국에선 '견제와 균형'이란 권력분립 원칙이 기능을 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제왕처럼 군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통령을 의미하는 'president'라는 단어가 '주재하는 사람'(presider)에서 유래했듯이 초창기 미국에서 대통령은 국정을 주재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대통령의 권한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대통령은 단순히 국정을 주재하는 것을 넘어서 국정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지도자로 그 역할이 변해 왔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와 통제를 받으며 여론의 부단한 감시를 받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이고 입헌주의인 것이다.
그런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제왕과 같은 권한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일었는데, 주로 전쟁 및 군사행동과 관련해서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낸 역사학자 아서 슐레징거 2세는 1973년에 펴낸 (The Imperial Presidency)라는 책에서 대통령의 전쟁 권한이 의회의 통제를 벗어나서 행사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헌법 원칙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케네디정부의 백악관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대통령의 독자적인 결정에 따라 세계가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는 무서운 현실을 직접 경험한 그는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행사해 온 군사행동권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보고 이에 대한 의회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실패로 귀결된 데 대한 반성이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고, 의회는 대통령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제한하는 '전쟁권 결의'를 통과시켰다.
'전쟁권 결의'는 대통령의 전속적 권한으로 여겨졌던 군사행동권마저 의회의 통제를 받도록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외교권과 군사행동권을 제외한 일반적 국정에 있어서는 입법권을 갖고 있는 의회가 대통령에 우선하는 권한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입법을 통해 시행하기 위해선 의회 지도자뿐 아니라 일반 의원들과도 부단하게 대화하고 의논을 해야 한다. 특히 의회의 다수당이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다를 경우에는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들과 긴밀한 협의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이명박 정권 말기부터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였던 이재오 의원은 현행 헌법이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고 있어서 대통령이 제왕처럼 행세한다면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했다. 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는 실패한 정부 형태로 뽑히는 이원적 집정부제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실현 가능성도 희박한 개헌보다는 실제 운영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제왕처럼 행세하는 대통령에 대해선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의사를 확실히 표명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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