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우아한 유영(遊泳)은 수면 아래 수천 번의 물갈퀴질 덕'이라는 말처럼 눈앞의 현상은 수십 곱절의 '축적된 배후'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MBC 인기 연예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여군 편에 난데없는 신인이 등장했다. 대구 출신 트로트 가수 박규리(37)였다.
좌충우돌 트러블 메이커로 등장하면서 미스 캐스팅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이 가수는 중반 이후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예능의 아이콘으로 존재감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예능의 신데렐라로 부상한 그는 SBS '자기야-백년손님'을 거쳐 MBN의 '동치미' 등에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 했고 누구는 '뒤에 누가 있다'는 의혹의 시선까지 보냈다.
두 시간 남짓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의 급부상 뒤엔 다 그럴 만한 이유와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예능의 대세로 떠오른 가수 박규리. 그의 강점과 매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최전방서 1천 회 위문 공연 '군통령' 별명
지금은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박규리 씨의 전공은 국악이다. 영남대 국악과를 나와 시립국악단에서 활동하던 재원이었다. 2009년 박 씨는 큰 무대를 위해 중앙대 국악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 졸업 후 교원대, 군부대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회당 개런티가 100만원을 넘는 특급 대우였지만 그는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강의 중에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강의와 자신의 특기인 국악 공연을 곁들여 보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었다. 바로 '마루예술단'이라는 공연단을 조직했다. 군악대와 협연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수도권 부대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군부대에서 인기는 올라갔지만 아쉽게도 박 씨의 지갑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시 국방부에서 차비로 월 50만원, 강연료로 50만원을 받았어요. 이걸 가지고 전방 위문공연을 다닌 겁니다. 단원들 수고비는 제가 충당해야 했으니 사실상 자선공연이었던 셈이죠."
지금도 최전방에서의 공연 시절은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야영지로 직접 찾아가 이슬을 맞으며 공연을 하기도 했고 어느 부대에서는 스피커가 없어 마을회관 확성기를 떼다가 음향을 맞춘 일도 있었다. 이렇게 수도권 최전방부대에 몇 해에 걸쳐 1천여 회 공연을 다녔다.
5년여 동안의 위문 공연을 마무리하고 박 씨는 정식으로 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했다. '군(軍)통령'이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는 소식에 군에서는 그동안 노고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침 기획 중이던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에 박 씨를 추천했다.
◆어릴 적부터 전통악기 재능, 예고서 국악 전공
'박규리가 대구 토박이라는데 맞아?' 그가 예능에서 뜨고 나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8등신 서구형 미모에 세련된 서울말도 혼란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대구 토박이가 맞다. 신천 상류변 수성구 상동에서 태어나 수성초등학교, 덕화여중을 나왔다.
어릴 적 박 씨의 집은 기사가 딸린 자가용을 몰 정도로 부유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바이올린, 피아노에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음악관은 시립국악단원이었던 외삼촌이 등장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외삼촌이 가끔씩 저희 집에 와서 향피리를 불어 주셨는데 그 선율이 너무 가슴에 와 닿는 거예요. 제 몸속에 숨어 있던 국악 DNA를 외삼촌이 일깨워 주신 거죠."
물론 집에서는 바이올린 전공을 고집했다. 어린 박규리는 두 음악의 틈새에서 많은 방황을 했다. 그러나 이 고민도 중3 때 한 사건을 계기로 쉽게 정리될 수 있었다. 가족 몰래 조금씩 배웠던 피리 실력으로 경북예고 국악경연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제야 부모님의 축복 속에 경북예고 국악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음악에 욕심이 많았던 박 씨는 향피리 외에 가야금, 아쟁을 섭렵했고 특히 아쟁은 예고 전공 1호였다.
◆'진짜 사나이' 출연 이후 예능 대박
예고 때부터 무대에 익숙했던 박 씨는 졸업 후에도 시립국악단, 군부대 공연까지 무대를 이어갔다. 일찍이 드렁큰 타이거의 '난 널 원해' 피처링을 맡을 정도로 끼를 타고 났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적인 장벽은 높고 거셌다.
우선 완고한 시댁 어른들의 반대가 가장 큰 장애였다. 주부의 몸으로 그 험난한 연예계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고민이 계속되던 2011년 박 씨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공연에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친 것이다. 당장 죽음이 그 앞에서 배회했고 시신경(視神經)이 마비돼 시력까지 위협했다. 일찍 처치한 덕에 그는 병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를 큰 깨달음으로 이끌었다.
"삶이 이렇게 쉽게 거둬질 수 있구나. 빨리 잃어버린 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들을 찾아가 '제 인생을 살게 해 주세요'라고 사정을 했죠."
박 씨의 눈물 어린 호소 앞에 비로소 시댁 어른들의 연예 활동 허가가 내려졌다. 때마침 '진짜 사나이' 스케줄이 잡혔다.
그러나 연예 초년생 박 씨에게 예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너무 의욕이 앞서다 보니 오버 액션이 나왔고 동료들과 마찰도 생겼다. 방송에서도 이런 부정적인 모습만 나오면서 급기야 캐스팅 미스라는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저히 프로를 계속할 수가 없어 도중하차를 생각할 즈음 이상한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박 씨의 좌충우돌이 하나의 콘셉트가 되어 주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시청자들은 그에게 '기인'(奇人)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박 씨의 엉뚱한 캐릭터 앞에서 스태프들도 빵빵 터지기 시작했다. '진짜 사나이'의 중후반부는 박규리의 무대라고 할 정도로 그의 존재감이 커져 있었다. 몇 대의 카메라가 고정으로 붙었고 방송의 분량, 비중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대구의 인기 트로트 가수로 키워주세요
'진짜 사나이'에서 주목을 끈 이후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이 줄을 이었다. SBS '자기야-백년손님', k.star '식신로드', MBN '동치미' 등에서 활약을 이어갔다.
특히 '자기야-백년손님'에서의 남편 헐뜯기 시리즈는 지금도 인터넷을 도배할 정도로 시중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남편 흉을 봐서 인기를 끌다니' 하고 발끈하던 시댁도 지금은 예능의 세계를 이해하시고 며느리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가장 억울할 것 같은 남편도 이젠 대놓고 '나를 밟고 넘어가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광주에 홍진영이 있다면 대구에도 저 같은 가수가 하나쯤 나와도 괜찮을 듯싶어요. 신천에서 멱 감던 박강희(본명), 용두골 약수 뜨러 다니던 거북이(동작이 굼뜨다고 붙여진 별명), 대구의 스타로 키워주실 거죠?"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